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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훈의 백령도 단상(斷想)-백령도 흰고구마

 백령도 흰(白)고구마

 상강(霜降)을 전후한 요즘 밭마다 고구마 캐기에 여념이 없다. 옹진군 백령도에도 중화동을 중심으로 전역이 고구마 캐기가 한창이다. 백령도에서만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흰(白)고구마. 일명 호(胡)감자. 백령도에서는 ‘땅속의 과일’이라 할 만큼 맛이 달아서 ‘땅 지(地)’, ‘과일 과(果)’를 써서 지과(地果)라 부른다.

 

백령도에서 논농사에 벼(Oryza sativa, 赤神力)를 심은 시기는 1930년대, 밭농사는 1960년대까지 조(粟) 농사가 주를 이뤘다. 물론 이 때는 간척 이전의 협소한 농경지이며, 초보적 영농 기술 상황에서 식량 사정이 어려워 긴긴 겨울밤 허기를 달래기란 힘들었다.

 

이 때 준비된 지과, 백고구마가 효자였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 호감자는 해안가에 흙과 자갈이 섞여 다른 곡식은 심을 수 없는 땅에서도 수확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거름을 많이 줘야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돌이 오줌을 싸서 더 잘된다는 말이 날 정도로 잘되던 작물이다. 백령도란 지역사정상 척박한 땅에 구황작물로 흰고구마가 으뜸이었던 셈이다.

 

‘옹진군 향리지(甕津郡 鄕里誌 1996)’에 의하면 “1904년 경 중국인들이 백령도와의 무역에서 물물교환으로 얻어진 희귀한 물건이었다. 이 때 남포리 화동 선창의 뱃사공이었던 최재길(崔在吉)씨는 희귀한 물건이 달고 맛이 있는 지과로서 땅에서 재배하여 생산한다는 사실을 중국인으로부터 알아내고 그 재배법을 알아 싹을 내어 시험 삼아 심었던 것이다.

 

가을에 수학을 해 보니 지과 싹 한 그루에서 큰 사발덩이 같은 것이 5~6 내지 7~8개나 수확을 하였다. 이를 보급하여 백령도 주민들의 식량보충에 크게 기여하였고, 그 후로 호감자를 대대적으로 집집마다 재배하여 겨울에는 안방에다 쌓아 놓고 점심, 저녁의 먹거리로 사용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백령도 흰(白)고구마의 이해를 위해 중화동 최의신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선친의 전언에 의하면 산동반도에서 왔다고 하는데, 전래 시기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이외 일조량을 감안한 고구마 경작지 선택, 배수를 고려한 지세, 수확 후 숙성 등 정성 제일이다.

 

구황작물에서 이제 특산물로 탈바꿈한 백령도 흰고구마. 이것은 120년 전 황해 횡단을 통한 동서문화교류의 산물이며, 역사적으로 백령도가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앞으로 다가올 긴 겨울밤 … 미리 동료들과 고구마를 구워먹을 요량에 옛 시절 단상에 빠져본다./ 김석훈·백령중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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