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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누가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가?

  • 최영
  • 등록 2021.11.29 06:00:00
  • 13면

 

84년 즈음 한 친구가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책 제목이 ‘황강에서 북악까지’였는데 표지의 사람 얼굴이 낯익었다. 9시를 알리는 땡소리만 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를 시작했던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전대갈’이라 부르며 이를 갈았던 우리는 지피지기라며 책을 펼쳤지만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사과서리를 하다가 들켜서 거짓말을 했는데 이때 부끄러움 때문에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아버지가 악질순사를 강에 처박고 만주로 도망갔다면서(실상은 노름빛 때문이라는데..) ‘행패를 부리는 순사 놈을 보는 소년 두환의 주먹이 불끈’ 운운하며 시작하는데 80년대 피끓는 청춘들이 완독하기에는 보통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작가 천금성은 당시 권력핵심이자 서울대 농대 2년 선배인 허문도의 권유로 전기를 창작(?)했다. 문단의 평가는 혹독했으나 작가는 글을 판 댜가로 문화방송 편집위원이라는 달콤한 자리까지 거쳤다.

 

책 제목대로 경남 합천 황강변에서 태어나 서울 북악산까지 탱크를 몰고 접수했던 전두환이 죽었다. 그는 국민들을 자기가 통솔하던 군대의 졸로 여겼다. 오월 광주를 비롯해 수많은 청춘들이 그의 군홧발 아래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절대권력도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어야 존재하는 법, 서정주는 80년 한 방송에 나와 전두환의 웃음을 두고 ‘5000년 이래 최고의 미소’라 칭송했다. 그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라며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바쳤다. 금남로의 피가 마르기도 전인 80년 8월, 조병화의 찬양시도 굉장했다. “청렴결백한 통치자/ 참신 과감한 통치자/ 인품 온후한 통치자/ …오, 통치자여! 그 힘 막강하여라” 그는 잔인하게 막강했다.

 

어디 문인들 뿐인가? 추앙의 대열에 가장 앞장선 것은 권력냄새 잘 맡는 조선일보였다. 80년 8월23일 ‘인간 전두환’이란 전면기사에서 “사회정화, 정치풍토의 개선도 그의 구국(救國)적 도덕관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한다며 물고 빨았다. 그 조선일보가 지금은 윤석열 후보를 열심히 추켜세운다. 윤석열 후보는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며 전두환 재평가를 시도했다가 ‘윤두환’이란 별칭을 하다 더 얻었다. 나는 그의 말을 실수라 보지 않는다. 그의 검찰총장 시절을 보면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오버랩된다. 윤석열 검찰은 탱크 대신 수사권과 기소권을 앞세워 검찰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후보가 이명박과 박근혜를 뒤섞은 이미지라고 하는데 천만에! 윤석열 후보는 박근혜와 전두환을 합친 것에 더 가깝다. 그가 입에 올린 주 120시간 노동은 전두환의 삼청교육대에서나 가능한 강제노동이 아니겠는가?

 

‘꽃’이란 시로 유명한 시인 김춘수는 전두환에게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만수무강하소서”라며 송시를 바쳤다. 시인의 바람과 다르게 전두환은 갔다. 허나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았다. 합천 황강에는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친필 휘호 표지석을 앞세운 채 남아있다. 나는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이 되는 길은 안팎에서 전두환이 남긴 병영유산들을 확실히 정리해야 비로소 열린다고 생각한다. 김춘수는 전두환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민정당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꽃이 되어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이름을 불러 자기가 꽃이 되고 싶어 한다. 선거를 앞두고 어떤 언론이 또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지 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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