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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출제오류 논란에 '집단지성'으로 맞서는 수험생들

직접 국내외 학자들 의견 수집…외국 석학 '문제 모순' 지적 끌어내
협업해 풀이과정·문제점 정리…카드뉴스 만들어 공론화 노력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 논란을 둘러싸고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법정에서 맞서고 있는 이들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고3 학생들이나 갓 졸업한 수험생들이다.

 

수능이 끝난 수험생이라면 대학 수시모집 합격을 기다리고 정시모집 지원을 준비하는 데 신경을 쏟을 시기지만, 소송에 나선 수험생들은 밤낮없이 소송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은 올해 11월 18일 치러진 수능에서 이 과목 20번 문항에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등 결국 문제를 풀 수 없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보고 정답 효력 집행정지 신청과 정답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다.

 

논란의 문제는 집단 Ⅰ과 Ⅱ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보기]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문항으로, 전문가나 이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에 소송에 참여한 수험생들은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집단 지성'을 발휘해 대응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이 문제가 어떤 점에서 모순이고 오류가 인정돼야 하는지 풀이 과정과 문제점 등을 최대한 쉽게 작성·정리하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카드뉴스를 여러 건 제작해 배포하는 등 공론화에 직접 뛰어들었다.

 

카드뉴스 제작 수험생 중 하나인 백모(21) 씨는 12일 연합뉴스에 "수능 마치고 나면 홀가분해야 하는데 소송에 준비할 게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다"면서도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또래 여론 형성뿐이라 시작했는데 많은 공감을 받아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에 이 문제에 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출하기 위해서도 학생들은 아이디어 구상부터 실행까지 직접 주도했다.

 

국내 과학교사·강사·교수를 수소문해 의견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문항과 문제 제기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외국 대학 교수·연구진에게 문제 검토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수백 통 발송하며 연락을 주고 받는 등 소통하는 역할까지 협업으로 해내고 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수험생 중 하나인 임모(20) 씨는 "한창 진학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이지만, 교수님들, 선생님들께 보낼 문서 만들기에 밤을 새우기도 하고, 이메일을 100통 넘게 보내기도 했다"며 "문의에 답변도 하고 그쪽에서도 연구실에서 칠판에 풀이한 사진을 보내오는 등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학생들의 노력에 집단유전학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 중 하나인 조너선 프리처드 스탠퍼드대 빙(Bing) 석좌교수는 한국시간으로 11일 트위터에서 이 문항에 '수학적 모순'이 있다고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한 "이 문항의 설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견서를 소송인단에 보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9일 수험생 측 신청을 받아들여 정답 결정을 본 행정소송의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유예하도록 했으며, 다음 날 본 소송의 첫 변론기일에서는 양측 주장을 듣고 17일을 판결 선고일로 잡았다.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교육과정평가원의 공신력은 이미 타격을 받게 됐다. 조건이 불완전한 문제를 내 혼란의 단초를 제공하고 결국 10일 생명과학Ⅱ 성적이 공란 처리된 성적표 배부와 대입 일정 차질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소송에 참여한 또 다른 고교 3학년 임모(19) 군은 공란으로 처리된 성적표를 받았을 때 심경에 대해 "문제 출제 오류에 대한 잘못과 귀책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하다"며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재판에 필요한 서류 작성에 노력한 동료들이 짧은 시간 생각났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무엇보다 수능 직후 이의신청 기간부터 평가원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됐으나 이에 대응하는 평가원의 태도가 안일했다며 실망과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이 문항의 조건이 불완전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이상 없음' 결론을 내렸다.

 

백 씨는 "출제기관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그에 대해 정확한 설명도 없고 납득할 이유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임 씨 역시 "신청 기간에 충분히 이의를 제기했으므로 꼼꼼하게 검토하고 인정했다면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라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긴다면 오류 검증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했으면 좋겠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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