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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철학 과외

 

'양비론'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명제나 사안을 두고 대립이 있을 때 A와 B 모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일컫는다. SNS에서 이를 일명 '모두 까기'라고 하는데 단어 뜻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하지만 양비론이라는 말에는 부정적 의미의 뉘앙스가 있다. A와 B를 비판함으로써 이익을 취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잠시 대선 국면으로 가보자. 지금 대선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양상을 띠고 있다. 민주당 후보는 예외 없이 수구정당 후보보다 도덕성이나 진보적 가치에서 조금이라도 앞서 있었다. 그런데 사상 최초로 두 가지 중요 요소가 엇비슷하거나 조금이라도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 비호감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와 파렴치한 전과 전력, 부패사건 연루 정황 등이 이를 입증한다.

 

이 상황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야 후보를 동시에 비판한다. A와 B 모두 대선 후보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런 비판을 무책임한 양비론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여기서 양비론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 기회주의적 태도라는 뉘앙스가 물씬한 양비론이 적확하게 쓰여졌는지 의심이 이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의 단어는 어떤 상황(맥락)에서도 맞아떨어지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이를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도 쓰는 법에 따라 게임처럼 다양하게 달라진다고 정리했다. 단어의 의미는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단어의 용법인 것이다.

 

서술한대로 양비론이라는 단어는 기존 뜻풀이를 고집할 경우 정치 상황을 적확하게 읽을 수 없다. 이를 뒤집으면 철학은 정치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된다.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과 같은 정치 상황을 기존 언어나 가치로는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는 이를 입증한다.

 

비단 정치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개념적 이해인 철학은 모든 영역을 관통한다. 평소에는 소중함을 못 느끼지만 조금이라도 혼탁해지면 금세 존재를 알게 되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이런 철학을 당연히 우리의 일상 깊은 곳으로 당겨 와야 한다. 날마다 먹는 밥이나 김치찌개가 되어야 한다. 이런 가운데 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지문에 헤겔의 『정신현상학』 일부가 소개돼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철학 과외를 시키는 못 보던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공교육에서는 글쓰기나 철학 등 기초적인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양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것들이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 때 대학의 인문학 계열을 통폐합시키는 등 고사시켜 '생각의 힘'을 키우는 기초이자 근본인 과목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 번역된 '소설로 읽는 철학' 『소피의 세계』를 쓴 요슈타인 가아더는 노르웨이 고등학교 철학교사 출신이다. 이 책은 누구나 철학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우리나라 초중고에서도 철학이 전래동화처럼 친근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고제 판소리를 틀어놓고 ‘서양 정신의 근간인 나르시시즘을 지금 흐르고 있는 음악에 견줘 비판하시오’와 같은 문제가 출제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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