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없앤 지 20년째다. 당시 애들 엄마는 드라마 작가, 나는 정치컨설턴트였다. 세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오후, "이 놈들이 TV에 중독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리사이클링업체에 주었다. 물론 과격했다. 애들은 잠시 금단증세를 보이더니 이내 받아들였다.
그 해 여름 한일 월드컵 때, 놈들은 온 세상이 왜 붉은 티셔츠 입고 미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지 모른 채 그저 눈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그 표정들 잊을 수 없다.
요즘 우연히 소위 '먹방'을 접할 때가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배치된 거구의 연예인들과 그 기획의도를 보며 식욕이 동하기는커녕, 측은지심과 함께 화가 치민다. '폭식'은 단순히 식도락이 아니다. 정치 경제의 으뜸주제를 그토록 탐욕적이고 희화적으로 추락시켜 긴 시간 전파를 낭비하는 건 옳지 않다. 먹고사는 일의 품격을 높이자.
폭식은 우선 자학이며, 굶주린 사람들을 희롱하고 고문하는 폭력이다. 그로 인한 비만은 정신병이다. 다양한 먹거리들의 특징과 장점, 검증된 약성(藥性) 등을 재미있게 알려주면 안되나. 그 협찬금의 일부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부하는 걸 병행하는 건 어떨까. 단 한번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실천하여 먼 나라의 방송 프로그램 하나가 그 힘들게 사는 한 마을을 구하는 걸 목표로 말이다. 그 감동이 클수록 연관기업들의 후원과 참여는 더 증가하지 않겠는가.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ality Lab)는 2021년 말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폭식 정치학'은 강자가 약자들을 수탈하는 것이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1)상위 10%의 소득이 전체소득의 52%
2)하위 50%의 소득은 전체소득의 8%
3)상위 10%의 부자들은 전체 부의 76%
4)하위 50%는 전체 부의 2%를 차지한다.
한국은
1)10%의 부자들이 전체 부의 58.5%, 하위 50%가 전체 부의 5.6%
2)상위 10%의 소득은 전체의 46.5%, 하위50%는 전체 소득의 16%를 차지한다.
실로 절망적이다.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 갭은 오직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의 사회환원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인류사회는 마하트마 간디의 제자 비노바 바베의 '부단(Bhoodan)운동'을 통하여 거대지주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땅을 쾌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10년간 전국을 걸어다니며 부자들을 설득하여 500만 에이커(60억평)의 땅을 가난한 농부들에게 주었다. 착한 부자들이 앞장서서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것이 문화가 된다면 저 불평등의 높은 벽은 현저하고 다정하게 낮아질 것이다.
한 달 뒤 등장할 새 정부가 이른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큰 철학을 국정기조로 하여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실천하기 바란다. 그것만이 모두가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