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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나는 어떻게 타격을 멈추고 그것을 제어할 방법을 배웠는가

 

 

마이클 돕스가 쓰고 출판사 모던 아카이브의 박수민 대표가 번역한 다소 장황하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그래서 이른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미국 작가 조너던 사프런 포어의 소설 제목이자 영국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톰 행크스와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았다.)’ 느낌을 주는 책 『1962–세기의 핵 담판과 쿠바 미사일 위기의 13일』은 논픽션 르포르타쥬이다. 그런데 실로 내용이 너무나 다이나믹하고 풍부해서 한편의 밀리터리 첩보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은 다큐를 이런 식으로 쓴다. 한 권의 대하소설처럼 쓴다. 그래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 『1962』는 그런 면에서도 귀감이 된다. 제대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나 역사학자가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등급 차이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1962』는 1962년의 급박했던 미국-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를 다룬다. 당시 소련의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비엔나에서의 미-소 정상회담 때 했던 약속을 뒤집고 쿠바에 핵 미사일 기지를 비밀리에 조성한다. 그리고 핵 탄두를 반입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이를 안 존 F. 케네디 정부는 쿠바 내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 공습을 시도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봉쇄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한다. 두 방식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면적인 핵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나저러나 전쟁이 터질 것이다. 내각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다. 당시 공군참모차장이었던 커티스 르메이의 경우가 ‘쓸어 버리자’는 쪽이었다. 케네디도 처음엔 그 생각에 기울었고 동생이자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는 더욱 강경한 쪽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평소의 대화에 형과 동생이 꽤 욕을 많이 해 가며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의 뒷담화, 사생활이나 개인관계가 끼어든 대화를 두고 그걸 인성(人性) 문제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어쨌든 케네디 형제는 봉쇄(blockade)를 택한다. 그리고 13일 동안 미국-소련-쿠바 간에는 치열한 군사외교의 물밑 협상이 오고 간다. 이때의 사태만큼 정상급 지도자부터 말단의 병사, 작전 요원, 일반 국민 한명 한명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낸 적도 없었다고 할 만큼 엄청난 일들이 진행된다. 이 책은 그걸 날짜별, 시간별, 공간별로 기록해 낸 것이다. 그 방대한 자료의 섭렵만으로도 마이클 돕스의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 거의 천재적 직관에 가깝다.

 

누군가 당시의 미-쿠바 미사일 사태 때 보여줬던 케네디 대통령의 선택을 윤석열 후보의 ‘선제타격’론이 이어받고 있다고 얘기하는 모양이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후보가 보여 준 지금까지의 여러 행태는 케네디만큼 군사, 외교적 면에서 방대하면서도 종합적인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책의 몇 가지 대목들이 눈에 띄는데 이런 얘기들이다.

 

“핵 시대에 대통령은 군대를 ‘지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매일, 때로는 매분 통제할 수 있(는 지적 능력, 방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단순하게 물리적으로만 비교해 봐도 케네디와 윤석열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케네디는 2차 대전 때 해군으로 참전했지만 윤 후보는 부동시라는 불명확한 이유로 면제를 받았다. 한 사람은 군사문화를 알고 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케네디는 외교라는 복잡한 정치를 공부하고 경험하며 성장한 정치인이지만(케네디의 부친은 주영국 미국 대사를 지냈다.) 윤석열은 안타깝게도 그렇게까지 배울 조건과 시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케네디는 확전으로 이어지는 군사적 선택을 최소화하려고 했지만(그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베트남전도 조기에 종식됐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후보는 그걸 극대화하는 쪽으로 선택하려 한다. 케네디는 미사일 위기를 ①미국의 터키 배치 미사일 철수 ②쿠바 불가침 약속 ③소련의 쿠바 배치 미사일 철수라는 단계적 협상으로 돌파한다. 하지만 윤석열의 ‘선제타격론’은 자칫 한반도의 내전이 미-중간 미-러 간 대전으로 이어지게 할 공산이 크다. 3차 대전이다. 무엇보다 미-중간 무역 갈등은 늘 화약고 앞에서 서성거리는 느낌을 주는 시대이다. 그러니 대북 선제타격론은 방어와 확전 방지의 구체적인 전략전술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오히려 세계 대전을 도발하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는 SNS에 마치 애들마냥 단 네 글자로 올리며 희희낙락할 ‘꺼리’가 아니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조차 윤석열의 군사외교적 태도에 회의감을 갖는 이유다.

 

강경파 커티스 르메이의 부하이자 공군전략사령관인 파워란 이름의 인물은 비열하고 잔인하며 용서를 모르는데다 정신적으로 불안하기까지 했던 군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실로 더 큰 문제는 그가 지나치게 많은 무기 체계를 통제하고 있고 특정 상황에서 그런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단 한 명의 잘못된 판단으로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상황이 벌어지면 모두가 공멸하는 최대의 비극이 벌어질 수 있었던 때라는 얘기다.

 

 

위대한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964년 이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 나는 어떻게 폭탄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그것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는가?’라는 긴 제목의 블랙코미디로 만들었다. 영화는 당시 백악관에서 벌어진 군 지휘부의 우스꽝스러운 대책 회의를 집중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속에서 통제 불능의 공군 장군 벅 터짓슨의 모습이 바로 공군 최고 지휘관 커티스 르메이이다. 국가는 무엇보다 가장 정상적이고 가장 상식적인 사람이 운영해야 한다.

 

무속에 기대거나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만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사람에게서 국가적 큰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한국은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서 있다.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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