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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가족사진

 

동영상이 ‘카톡’에 올라왔다. 딸이 촬영한 동영상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웃음소리부터 쏟아진다.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다. 웃음은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처럼 요란하다. 흔들리는 웃음을 따라 화면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화면 저 편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다. 흔들리는 화면 한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는 중년 사내가 비틀거린다. 술에 취한 사내의 비틀거림은 흔들리는 화면과 무관하다. 취한 사내의 입에서 박자를 놓친 노랫말이 흩어진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노랫말을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가 주워 담는다.

 

“아빠, 춤도 춰야지.” 딸의 주문에 중년의 사내가 두 팔을 치켜들고 비틀어댄다. 흐느적거리는 꼴이 행사장 입구에서 손님을 불러대는 바람풍선 같다. 바람풍선의 두 팔이 허우적거릴 때마다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른다.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소리 같아서일까.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입 꼬리가 먼저 올라간다. 아무리 필름을 되감아도 그날 밤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끊어진 필름 대신 남은 건 술에 취한 중년 사내의 동영상뿐이다. 몇 번을 다시 보았지만, 동영상 속의 중년사내가 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래를 불렀음이랄까. 아내와 딸 앞에서 실없이 울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는가. 개 같은 날의 끄트머리에서, 기꺼이 개가 되어 꼬리를 흔들었노라 고백했으면 어쩔 뻔 했는가. 어쭙잖은 글이나마 팔아보겠다고, 자존심까지 술에 말아 꿀꺽 삼킨 사실을 실토했으면 어쩔 뻔 했는가. 그러다 끝내 참지 못하고 술상을 박차고 일어났음을 자백했으면 어쩔 뻔 했는가. 박차고 나오는 그 순간에도 좀 더 참지 못했음을 후회하였노라 털어놓았으면 어쩔 뻔 했는가. 생각할수록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곤 택시를 잡아탄 것이 기억의 끝이다. 없는 기억 속에서, 집에 돌아와 부른 노래는 김진호의 가족사진이었다. 그의 노래는 나의 십팔번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라서, 김진호의 가족사진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김진호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아버지의 명함사진을 붙여놓았다. 그것이 김진호가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 사연이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를 듣자마자 내 십팔번이 되고 만 까닭 또한. 김진호가 그러하듯이 나의 가족사진에도 아버지가 없으니까.

 

며칠 전에는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며 막내 동생이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왔다. 형만 한 동생은 없다고 하였는데, 내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자식노릇은커녕 사람구실도 동생들보다 못하다. 헛것으로 나이만 먹은 가짜 어른이라고나 할까. 우리 집 거실에도 가족사진은 걸려있다. 김진호가 부른 가족사진의 노랫말처럼, 사진 속 아이들은 아빠를 닮아있다. 나는 사진을 볼 때마다 나를 닮은 아이들에게 속으로 빈다. 겉모양은 닮았더라도 속모양은 못난 아빠를 닮지 말라고. 나무를 닮지 말고 숲을 닮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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