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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 (난독일기)] 저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아내에게서 회식이 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딸은 야간근무를 하는 날입니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무얼 살까, 한 끼니를 해결하는 데도 선택이 필요합니다.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 고사리와 도라지와 숙주나물을 샀습니다. 까만 비닐봉지에 세 가지 나물을 담고 9000원을 계산하는 순간에도 저녁메뉴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고추장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마트에 들렀습니다. 태양초 고추장(1.8kg)과 다담 된장찌개양념(530g), 마파두부 양념소스(130g)와 꽁치통조림을 계산대에 올리고 2만 6660원을 지불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막혔습니다. 빨갛고 파란 신호등 색깔에 따라 차와 사람이 사거리를 가로지릅니다. 내가 선 횡단보도 신호등 색깔은 멈춤입니다. 맞은편 신호등에 걸린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나부낄 때마다 얼굴 앞에 새겨진 숫자가 비상등처럼 가쁘게 펄럭입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보행자 신호등 밑에 숫자가 깜빡거립니다. 한 번 깜빡거릴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듭니다.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 때문일까요. 줄어드는 숫자가 마치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카운트다운 같습니다. D-15, D-14, D-13...

 

대통령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마치고 나면 곧장 지방선거로 이어집니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투표를 할 때마다 답안지를 작성하는 심정입니다. 입학시험이나 승진시험에는 있는 정답이 투표용지에는 없습니다. 틀림도 맞음도 없는 선택 중에서 하나를 골라 도장을 찍는 것이 투표입니다. 중간고사나 학력고사처럼 네 개나 다섯 개 문항 가운데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열네 개의 답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리도 어려운 문제를 앞에 두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고르십니까.

 

저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정답이 아닌 것부터 지워간다고나 할까요. 절대로 정답일 수 없는 것, 정답이라 이름 붙여선 안 될 것부터 걸러내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지우고 걸러낼 때, 내가 정한 기준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무리로부터 사람 같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잣대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단식농성을 하던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며 배달음식을 시켜먹던 자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을 덮으려던 정치인들 또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스크로 가리고 옷으로 덮는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가리고 덮어도 그들이 흘리는 웃음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남습니다. 그 냄새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치욕의 역사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 아닌 것이 사람 위에 군림할 때, 여지없이 사람은 죽고 역사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5.18의 역사 또한 그렇습니다. 5월 광주는 망월묘지에 묻힘으로 끝난 게 아닙니다. 저기, 거리 곳곳에 나부끼는 대선후보의 현수막에도 그들의 후예들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가장 먼저 지우려는 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저는, 거꾸로 생각하며 하나씩 지워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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