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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예술기행 ] 조르주 비제와 부기발

 

“바스크의 촉망받던 군인 돈 호세.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집시여인에게 영혼을 빼앗겼다. 착하고 얌전한 고향처녀 미카엘라와 결혼하려고 맘을 돌려 보지만 그 집시여인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비극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이 곡의 작곡자는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다. 그 역시 너무나 천재적 이어서였을까. 서른여섯의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카르멘을 두고 한 말 같다. 비제는 파리에서 가발을 만들고 이발사를 하다 가곡 선생이 된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였을까. 피아노에 소질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건 어머니다. 비제는 어려서 피아노와 작곡 경연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오페라를 작곡한 건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아름다운 ‘진주조개잡이(Pêcheurs de Perles)’는 스물다섯에 만들었다.

 

하지만 비제는 아직 성공한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에게 찬스가 온 건 파리 오페라 코미크가 카르멘을 주문했을 때. 비제는 야심찬 꿈을 갖고 부기발(Bougival)로 거처를 옮겼다. 센 강 둔치의 한적한 곳에서 카르멘을 쓰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그가 쓴 원고는 1000페이지. 그러나 초연은 실패였다. 관객들에게 관능적이고 자유분방한 카르멘은 시기상조였다.

 

비제는 탈진했고 심근경색으로 부기발에서 숨을 거뒀다. 카르멘이 성공을 거둔 건 그의 사후 4개월 만인 빈에서였다. 공연을 본 니체와 바그너, 차이콥스키는 극찬했다. 브람스는 카르멘을 무려 20번이나 보았고 “비제를 포옹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가겠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카르멘의 작곡가를 사랑했다.

 

 

비제의 안식처였던 부기발. 이곳은 센강이 툭 튀어나온 녹색의 작은 낙원이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앞 다퉈 여기 들어와 불멸의 경치를 그렸다. '부기발에서의 춤'을 그린 르누아르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러시아 작가 뚜르게네프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비제와 교류했다. 파리지앵들도 부기발을 좋아했다. 둔치의 선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겼다.

 

 

오늘의 부기발은 19세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불멸의 작곡가 비제의 집과 카르멘 광장이 초입에 멋지게 복원돼 있고, 노트르담 성당 주변에는 유쾌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부기발의 자랑 마쉰 드 마를리(machine de Marly)의 자취는 여전하다. 세계에서 경이롭기로 이름난 이 기계는 루이 16세가 고안한 것이다. 센 강의 물을 품어 베르사유와 마를리 성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대선이 끝났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스산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외 이동 제약이 풀리기 시작했다. 정처 없을 땐 여행이 약이다. 파리로 훌쩍 떠나 밤거리를 거닐며 심호흡도 해보고 태양이 다시 뜨면 교외선에 몸을 실어보라. 30분이면 비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부기발에 당도한다. 거기서 아름다운 카르멘의 아리아 ‘아바네라(Habanera)’를 들어봐라. 분명 카타르시스와 함께 힘이 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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