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는 문학관이 없어, 소장하고 있는 서적들과 함께 감상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일흔살이 훌쩍 넘은 김훈동(78) 시인은 ‘하루 빨리 수원을 대표할 문학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최근 소장한 옛 시집 200여 종을 감상할 수 있는 ‘홀림·떨림·울림’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수원토박이 김 시인은 이번 전시회가 수원시 문학관 설립의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김 시인은 “수원이 인문학의 도시로 완성되기 위해 문학 자료들이 모인 문학관이 설립돼야 한다”며 “문학관이 있다면 시민들의 문학 수준이 향상되고 위대한 문학가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실제 수원시는 지난 2013년부터 ‘인문학 전문팀’을 만들어 ‘인문학 도시 조성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당시 수원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이었던 김 시인은 수원시를 인문학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고은 시인을 수원시에 자리 잡도록 노력 했다. 또 팔달구 일대의 ‘고은문학관’ 설립에 참여했지만 고은 시인의 성추문 논란이 일면서 설립 계획은 2018년 완전 철회 됐다.
김 시인은 “노벨 문학상으로 거론된 고은 시인과 고은문학관이 수원에 자리 잡으면 수원시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문학관 설립이 물거품이 돼 아쉬움이 많았다”고 소회했다.
2015년 당시 고은 시인은 수원시와 연고가 없어 수원문인협회의 반발이 거셌다. 협회는 고은문학관 설립 반대 성명서발표와 기자회견을 가지기도 했다.
김 시인은 “문학은 연고와 경계가 없어 박경리 소설가가 통영 출신이지만 문학관은 원주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며 “연고에 연연하지 않고 애향심만으로 수원시 고은문학관 설립을 주장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시인에게 수원은 고향이자, 자랑이요, 삶의 터전이라고 강조했다. 김 시인은 “수원시 문학관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1만여 종의 문학 서적을 기증할 것이다”고 말했다.
앞서 김 시인은 역사적인 자료를 남기기 위해 지난 2010년 1만여 종의 잡지 창간호를 수원박물관에, 2020년에는 4000여 권의 도서를 선경도서관에 기증한 바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장만영 시인의 ‘잊으려도 못 잊어’를 비롯해 조지훈·박두진·박목월 청록파(靑鹿派) 시인의 시집 등 1950~1960년대에 출간된 시집, 미니시집 등 66권을 전시했다. 김 시인의 시집 ‘틈이 날 살렸다’ 도 볼 수 있다.
방문객들은 우리나라 최초 시 이론서인 ‘현대시작법’, 이상 문학의 범주를 최초로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상전집’ 등 귀중한 서적을 접할 수 있다.
김 시인은 “활자로 된 자료는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기록”이라며 “희귀한 서적들을 모아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전시한 서적들 중 서정주‧박목월‧조지훈의 ‘시창작법’을 으뜸으로 뽑았다. ‘시창작법’은 자신에게 울림을 준 스승이라 평가하며 “창작의 방향을 알려줘 시인으로 양성해준 교본”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방문객들에게 이번 전시회가 시라는 청량제로 정신을 맑게 깨우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김 시인은 “시란 우리말을 은유와 상징으로 함축해 지은 언어의 집이기에 전시회 방문객이 보자기를 풀듯 시 한 줄의 의미를 펼쳐보라”고 강조했다.
수원 선경도서관 1층 중앙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진행된다. 도서관 운영시간이면 언제든 방문할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 경기신문 = 정창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