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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눈먼 자들의 도시

 

서양 어느 나라의 한 도시에서 퇴근 길 러시 아워에 신호대기 중인 한 젊은 사내의 눈이 갑자기 멀어버린다. 그 상태는 흑암이 아니라, 우윳빛 바다와 같았다. 그를 도와 또 다른 사내가 그의 차를 대신 몰아 귀가시킨 뒤 그 차를 훔쳐 달아난다. 아내의 도움으로 안과의사를 찾는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진단을 내린 의사부터 모두 전염으로 눈이 먼다. 그들은 오래된 폐쇄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거기서 유일하게 정상인 안과의사의 아내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탓에 멀쩡했던 선남선녀들이 참혹하게 망가지는 현상을 단계적으로 체험하고 목격한다.

 

 

최근 故 호세 사라마구(Jose Saramago.1922~2010. 포르투갈 출신)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다시 읽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온세상이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을 앓고 있는 판국이라서 그 감회와 감정이입이 판이했다. 천재 예술가들은 '특급무당'의 팔자를 함께 타고나는가. 선생은 밑바닥 노동자 출신으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 인연으로 작은 신문에 긴 세월 칼럼을 썼다. '수도원의 비망록'이 1998년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영화는 2008년에 개봉되었다. 유투브에서 500원이다. '제2의 예수복음' 출간(1991)으로 망명했으며, 교황청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21세기 글로벌 정치판에는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 큰 인물들이 없다. 간디, 만델라, 카터, 잭슨 같은 분들의 부재는 인류사회 전체의 결손(缺損)이다. 이 나라로 좁혀도 똑같다. 큰 눈의 어르신들이 없다. 그래서 상하좌우 구분없이 나라 전체가 사분오열의 오합지졸들의 놀이터거나 깍두기들의 싸움터 그 이상으로 자라지 못한다. 정치든 기업이든 종교든 그 어느 판이든, 명함 큰 놈들일수록 후안무치로 거들먹거린다. 탐욕에 눈먼 행보가 거침없다. 참 시시하다.

 

중간급이나 말단들도 윗놈들 눈치만 제대로 살피고 교언영색을 능란하게 구사할 수만 있다면, 돈도 빽도 없는 민초들이 당하는 피해나 불편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처자식을 위하여 실속 있는 쪽으로만 굴러다니는 것들이 승리한다. 이 비열한 '연기(演技)문화'로 특히 공공분야는 기강이 빈약해지면서 마침내 댐 무너지듯 끝을 보게 되는 것이다. 

 

꾸준하게, 착하게, 창의적으로, 당당하며 겸허하게, 천지지간 만물지중(天地之間 萬物之衆)의 일원으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 거다. 그렇게 자연의 일부로 사는 사람들 말고는 모두 저 눈먼 자들의 도시정부, 그 군대, 그 주민들처럼 눈이 먼다. 앞을 못보는 군중은 어린 아이와 노인처럼 연약한 이들까지 한 패 지어 그 협동의 힘으로 공멸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는 생각과도 멀다. 디스토피아다. 그래서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한다. 처자식도 예외가 아니다. 먹거리와 전기가스의 문제, 패륜의 일상화 이전에, 먼저 부끄러움이 사라지면서 눈이 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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