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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가이아 (Gaia), 혁명적 진화 그 복잡계의 진실

- 가이아 이야기 2

- 과학의 고독

 

지구 전체가 하나의 자율적 조직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한 ‘가이아’의 개념은 애초에는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여겨졌다. 환경이 생명체를 지배하는 것이지 생명체가 환경을 바꾸어내기도 한다는 논리는 가당치도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이아’라는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름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주기에 적당하기 조차했다. 사실 이 명칭은 제임스 러브록과 이웃해 살고 있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의 작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이 지어준 것이었다. 골딩은 훗날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과학과 인문적 사유가 만나 ‘가이아’라는 이름이 생겨난 셈이었다.

 

 

제임스 러브록이 80세(2000년)를 막 넘기면서 출간한 자서전 『가이아에게 경의를 (Homage to Gaia)』에는 양자역학의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1936년에 했던 말을 인용해놓았다. 자신의 이론이 처음에는 거부되었다가 40년이 지나 책이 나온 당시에는 지구과학의 한 중심이론으로 수용된 것을 기뻐하면서 과학자가 겪어야 하는 고독에 대한 심정을 인용으로 대신 풀어놓은 것이었다.

 

“새로운 과학적 사유는 아무리 조직이 잘 되었다고 해도 어떤 공동체로부터 생겨나는 법은 없다. 그것은 독자적으로 뭔가 영감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혼자 고독하게 쏟아 자신이 마주한 문제와 온통 씨름하는 이의 머리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모아 그 시기에는 그야말로 자신의 세계 전부가 된 그 문제에 집중시킨다.”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사유의 틀이 태어나는 과정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세계와의 대결이자 일종의 투쟁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는 고립과 배척, 그리고 유배의 길을 자초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대 전체가 그를 적대하면 죽음에도 이르게 된다. 그래서 과학은, 탄생은 ‘홀로’이나 성장은 ‘함께’의 관계가 맺어지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칫 고사(枯死)당하고 만다.

 

제임스 러브록에게는 그래서 린 마굴리스가 무척 소중하다. 그녀는 1971년부터 러브록과 뜻을 같이 하여 가이아 이론을 발전시킨다. 그건 미국의 과학계 전체로부터 적대적인 반응을 받는 상태를 각오해야 했고 또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화학 연구자와 생물학자의 만남은 이뤄졌고 그것은 지구과학 전체의 뿌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출발이었다. 1965년에 러브록의 마음에서 떠오른 가이아 개념은 이런 과정을 통해 기존의 과학적 사유가 그어놓은 경계를 허물어갔다.

 

러브록은 그가 대면해야 했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장 중요했던 작업은 생명체의 조직은 단지 환경에 적응해나갈 뿐이라는 생물학적 독단(dogma)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양자역학이 일깨운 것처럼 우리가 원자를 관찰하려면 원자의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진화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가이아를 파악하는 핵심이다.”

 

-가이아 개념의 진화

 

린 마굴리스는 다윈이 바로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지구환경과 생명체의 관계를 상호적 차원으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정통 다윈주의자들이 이를 용납할 리 만무했다. 환경이 생명체의 진화를 가져오고 생명체의 활동이 거꾸로 환경의 변화를 결과하는 이 거대한 총체적 복잡계의 구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 대한 이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정보의 소통과 이를 관할하는 시스템 연구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가 가이아의 개념과 연결되면서 생명체와 무생물의 관계는 새롭게 정의되어 갔던 것이다. 둘 사이의 경계는 딱 부러지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과 교환, 협력과 변화의 관계로 이해되어 가기 시작했다. 서로 넘나들면서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변화의 주체가 되어가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러브록의 가이아 개념은 ‘사이보그(cyborg)’의 개념까지로 확장된다. 사이버네틱스가 정보 체계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사이보그는 그것과 유기체(organism)가 융합된 결과다. 다시 말해서 “cybernetics+organism=cyborg”가 된 것이다. 도너 해러웨이(Donna Harraway)는 생물학에 페미니즘의 관점을 확립하는 기여를 하는데 그는 가이아를 사이보그로 파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러브록의 지구개념인 가이아는 그 자체로 사이보그이다. 그것은 자율적 운동력을 가진 복잡계로서 지질학적 단위, 유기체의 단위, 기술적 단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서로 경계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동물과 기계, 생명체와 무생물 간의 정보 소통의 경계 구별을 해체한다.”

 

 

이 관점과 논리의 중요성은 생명체만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나누는 것이 아니며, 생명체가 아닌 물체나 요소는 그 자체로만 그대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있다. 서로 매우 활발하게, 그리고 서로의 경계선에 들어서서 새로운 변화를 주고 받는다는 것에 대한 각성이다. 이런 인식이 별거인가 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는 순간부터 그 어느 하나도 서로에게 무심한 존재는 없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고 그로써 각기의 존재가 유지되는 동시에 그것은 거대한 전체로 움직인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태고(太古)의 가이아는 이후의 생명체를 태어나게 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된다. 지구가 ‘생명체 외부에 있는 환경’의 개념을 넘어서는 차원에 눈뜨게 된다는 것이다.

 

“가이아는 인간에게 자신을 태어나게 한 지구의 자궁, 그 매트릭스(matrix)를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관점의 구도를 만들어준다.”

 

 

이것은 우주,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지구가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새로운 생명과 그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지속적으로, 상호적으로 창출하는 현장임을 일깨운다. 신부이자 진화 지질학자이면서 우주적 사유를 인간의 인식과 결합시킨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이 일찍이 그의 책 『인간현상(The Phenomenon of Man/1955)』에서 제창한 “우주 기원 과정론(cosmogenesis)”과 만나는 개념이다. 이는 이미 결정되어 존재하는 우주를 파악하는 ‘우주론(cosmology)’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차원으로 움직여나가고 변화하며 진화해가는 우주의 생성과정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세포 혁명의 힘

 

 

샤르댕에 따르면 그 진화의 정점에는 ‘정신의 영역(noosphere)’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모든 진화의 획기적인 출발점이 다름 아닌 “세포혁명(cellular revolution)”이라고 그는 규정한다. 생명활동의 자율적 체계와 자기 인식의 능력까지 가지게 되는 사건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복잡계의 출현(emergence of complexity)”이다. 린 마굴리스의 “공진화(endosymbiosis)” 개념은 이에 대한 과학적 입증이자 그 과정이 미생물의 단계에서부터 가진 상호협력체계의 세계를 발견하게 해준 인식의 열쇠이기도 하다.

 

 

린 마굴리스와 그의 아들 도리언 세이건이 함께 집필한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는 지구과학적 서술과 진화 생물학이 서로 결합해서 가이아의 생명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한 매우 뛰어난 저서이다. 두 사람은 지구가 형성된 45억년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물질적, 화학적 요소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결합과 분리가 생명체의 조건을 구축해 나가는가를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그리고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미생물인 박테리아로부터 어떤 지구적 차원의 상호변화의 과정이 만들어지는지 자세히 분석해 낸다.

 

린 마굴리스는 가령, 박테리아라고 하면 보통 세균 정도로 생각했다가 박테리아가 발명해낸 신진대사 시스템이 생명체를 위한 에너지 가공의 토대가 되고 이 능력이 오늘에 이른 인간의 원초적 진화의 출발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을 정리한다.

 

“미생물은 그저 환경에 적응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생물은 호흡과 신진대사의 과정을 통해 산소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진화시키고 이로써 생명과 그 생명이 존재하는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 나간다.”

 

따라서 린 마굴리스의 공진화의 개념에서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매우 중요한 단위가 된다. 산소를 신진대사의 과정을 통해 에너지화 시키는 기능을 가진 세포가 자신의 세포막을 지닌 채 다른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마굴리스는 각기 자신이 해낼 수 없는 기능을 가진 서로 다른 세포가 결합하면서 상호협력 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오랜 시간의 과정에서 서서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는 “돌연변이(mutation)”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 말한 “세포혁명”인 셈이다.

 

린 마굴리스는 이런 상호 협력과 결합, 그리고 혁명적 진화의 작동에는 유전자 정보의 교환을 극적으로 이루는 ‘성관계(sex)의 진화’가 가장 경이로운 요소가 되었다고 하면서 서로 다른 개체의 융합이 가져오는 가이아 시스템 내부의 법칙을 규명한다. 그것은 “함께 살기(living together)”이다. 그 어떤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일방적 명령체계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체이고 모두가 서로에게 줄 것이 있으며 모두가 서로에게 협력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포착해낸 것이다.

 

이로써 이뤄지는 “자율적 자기 조직화를 하는 복잡계(spontaneous self-organizing complexity)”는 그 요소들이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점도 있지만 상호 교류의 활동력이 높고 역동적인 융합과 상호적응을 통해 혁명적 변이를 거치는 창조적 차원을 열어간다는 점이 핵심이다. 1980년대 말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이런 복잡계의 역동적 생명성의 자기 조직화를 주목하는 연구 운동이 “산타 페 연구소(Santa Fe Institute)”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바는 이 모든 창조적 역동성은 혼란과 무질서의 현실에서 가동되는 운동원리라는 점이다. 지구의 태고 환경이 지녔던 폭풍과 화염의 조건은 그 변화의 과정에서 생명의 질서를 구축해나가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또한 산소를 배출하는 생명체의 등장이 그 조건에서는 강력한 오염물질인 산소를 신진대사의 대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발명해낸 것은 이전의 조건과 비교하면 대혼란(chaos)인 위기가 도리어 창조적 계기가 되는 것을 알게 한다. 그것은 새로운 복잡계 출현의 기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산타 페 연구소는 이 과정을 “카오스의 모서리(edge of chaos)”라고 표현한다. 그 지점은 생명체가 지금까지 유지했던 그 모든 방식과 시스템의 위기가 닥치면서 체제적 안정성이 무너지는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찰나이다. 그러나 이 고강도의 긴장은 새로운 생존 방식의 치열한 모색으로 이어져 차원 다른 복잡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린 마굴리스의 공진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세포의 결합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진화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지구환경의 카오스 모서리’에서 생겨난 혁명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역사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이아의 인간이 가진 주체적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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