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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시민·사회단체 “尹 역사 인식 부재”…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건국절 논란 또 재연

“반공·대일 관계 개선”…광복절 축사 의미 해석 놓고 의견 분분
윤석열 대통령 “전체주의 국가 위한 독립운동 아님…일본, 힘을 합칠 ‘이웃’”
황희형 광복회 “좌익 사상 독립운동가들 배제…당사자와 후손들에게 상처 준 것”
이주현 평화나비 “선결 조건 언급도 없이 ‘친일’…국민·피해 당사자들 동의 못 해”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한국 근현대사 인식 부족…극우적 과거사 왜곡 형태 반복 우려”

 

‘과거사’  한 번, ‘자유’  33번.

 

윤석열 대통령은 제77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우리의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자유’를 33차례 언급하며 강조했다. ‘과거사’는 단 한 번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독립운동은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며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한·일 관계에 대해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며 “양국 간 경제·안보·사회·문화 등 폭넓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 및 학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일본의 민족 탄압에 대한 역사 인식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기신문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역사 인식 문제를 제기한 시민·사회단체 및 학계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황희형 광복회 “좌익 사상 독립운동가들 배제…당사자와 후손들에게 상처 준 것”

 

 

“무더운 날씨 속에 그 발언을 듣고 나니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의심했다.”

 

황의형 광복회 경기도지부장은 지난 15일 제77주년 광복절 행사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에 유감을 표했다.

 

황 지부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의 사상이 좌와 우로 나뉘어 갈등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긴 하나, 일제의 서슬 퍼런 총칼 앞에 억압받아 피눈물 흘리며 신음하는 민중들을 위해 차이를 인정·존중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면서 독립운동이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지적했다.

 

황 지부장의 부친인 황계주 선생도 유학생 시절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조직 여우회(麗友會)를 세워 활동했다. 일제에 의해 활동이 발각돼 국내로 돌아온 뒤 여운형과 함께 국내서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광복과 분단 이후 황 선생은 여운형·홍범도 등과 함께 좌익 인사로 내몰려 한동안 독립운동 역사에서 드러나지 못했다. 긴 세월이 지나서야 황 선생은 2005년에 국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부친으로 인해 어려움도 겪어봤던 황 지부장은 “광복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좌와 우로 나뉘어 갈등을 겪었고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으나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여운형 선생처럼 좌와 우를 함께 모아 광복과 정부수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사회주의 사상(좌익)을 가진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한 것은 독립운동가 당사자와 후손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또한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공산 세력에 맞서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것 등을 ‘현재 진행형’의 독립운동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드러난 셈”이라면서 “자칫하면 이번 경축사로 인해 일본과 친일주의자들이 다시 기세등등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황 지부장은 매년 광복절 주간이 되면 공공기관 및 학교 등을 순회하며 독립운동사를 강의해왔다. ‘역사를 올바르게 세워야 민족의 미래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진 그는 “이런 문제가 다시금 재발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독립운동사 조기교육 등 시민들의 올바른 역사교육이 활성화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이주현 평화나비 “선결 조건 언급도 없이 ‘친일’…국민·피해 당사자들 동의 못 해”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과거사 해결 없는 한일 관계 개선에 동의할 수 없다.”

 

이주현 수원평화나비 상임대표는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확고히 밝혔는데, 이때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한 점에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고 평하면서도 “허나 선결 조건에 대한 언급도 없이 섣불리 일본을 ‘힘을 합쳐야 할 이웃’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국민들과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들이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15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1급 전범 15명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치고 참배한 행각을 보면 과거사 반성이 전혀 안 된 것이 드러났다”며 “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제로부터 피해당한 이웃 국가들을 무시한 외교적인 테러”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1966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 한일 합의로 완전히 해결되었다고들 하지만, 최근까지 일본이 전 세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조직적인 테러와 외교적인 압박·회유는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도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발언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짓밟더라도,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자유와 인권, 법치를 존중하는 태도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게 유엔(UN) 고문방지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할 것을 요청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에 진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 규정한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은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미·일 안보 동맹 공조를 내세워 역사적 ‘굴종’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한·일 간 과거사 문제를 어리석게 타협하는 오류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한국 근현대사 인식 부족…극우적 과거사 왜곡 형태 반복 우려”

 

 

“윤석열 대통령의 한국 근현대사 인식이 얼마나 심각한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경기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이 한국 근현대사 속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왜곡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라고 발언했는데,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결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설령 그런 활동했던 인사들을 국가보훈처에선 서훈조차 하지 않았다”라며 “해당 발언은 당시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등 전체주의에 항거하신 독립운동가들을 모독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윤 대통령 본인이 직접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국내외 무장투쟁을 전개한 분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 무장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분들’을 극찬했는데, 사실 이러한 분들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 사상 계열에서 운동하셨던 분들이었다”면서 “이분들을 그동안 국가보훈처에서도 서훈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윤 대통령의 경축사는 국가 보훈정책과도 전혀 맞지 않다”고 단언했다.

 

방 실장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에겐 좌·우 이념은 당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무장독립투쟁과 애국계몽운동 모두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두 개의 날개’였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 중 ‘독립운동은 광복 이후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통해 이어져 왔고 현재도 진행중’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방 실장은 해당 발언이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일어난 건국절 논란을 재연하겠다는 신호라 규정했다. 그는 “결국 해방 후 친일에서 반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반민족 행위자들에게 ‘건국의 영웅’이라는 허울을 제공하겠다면서 벌인 ‘뉴라이트 교과서’·‘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 과거사 왜곡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임석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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