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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사랑도 예술도 모두 완성했던 그녀 ‘김향안’

뮤지컬 ‘라흐헤스트’
이상·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의 삶
과거로 흐르며 지난 삶 돌아보는 ‘향안’
‘동림’과 ‘향안’의 시점 교차 구성 돋보여

 

“동림아 너 이제 겨우 22살이야. 슬픈 기억 속에 널 가두지마.” (향안)

“우리의 과거는 여기 이 시간 속에서 내가 잘 지킬게. 너는 계속 꿈을 꾸고 나아가줘.” (동림)

“너는 내 기억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었네.” (향안)

“그럼 당연하지 변동림인데.” (동림)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Les gens partent mais l’art reste)’ 너의 느낌표를 믿어.” (향안)

 

‘날개’,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을 남긴 소설가이자 시인 이상(1910~1937). 한국 추상미술을 선도했던 화가 김환기(1913~1974). 이 두 천재 예술가의 아내로 살았던 김향안.

 

뮤지컬 ‘라흐헤스트’는 누군가의 아내로서 소개되는 것이 아닌 김향안의 삶, 그 자체를 조명한다.

 

시인 ‘이상’을 만난 20살의 ‘동림’(김향안의 본명)과 화가 ‘환기’를 만나 여생을 함께한 ‘향안’의 시간이 역순으로 교차되며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처절한 이별을 경험했던, 예술가의 아내에서 스스로 예술가가 된 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2004년 2월 29일, 생의 마지막 순간에 지난 삶을 돌아보듯 수첩을 거꾸로 한 장, 한 장 넘기는 향안. 그의 시간은 남편이었던 환기를 만났던 때로 거슬러 가고, 1936년 시인 이상을 처음 만났던 경성 카페 낙랑파라부터 동림으로서의 시간은 순서대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상과 떨어지는 빗방울을 세며 행복해하는 풋풋한 동림과 함께 춤을 추자며 작업에 지친 남편을 웃게 하는 향안을 보며 관객들은 절로 김향안의 매력에 빠져든다.

 

하지만, 작품은 단순히 동림과 향안의 시점을 교차하는 것으로 무대를 채우지 않는다. 향안은 동림에게 수첩을 주워주고, 고민을 묻는 등 동림의 시간 속에 함께 존재하기도 한다.

 

이상의 프로포즈에 가방 하나 들고 패기 있게 집을 나왔지만, 막상 “사실 100퍼센트 느낌표는 아니야”라며 주저하는 동림에게 “아프고 외로운 나날이 많을 거야”, “너의 느낌표를 믿어”라는 응원을 보낸다.

 

반대로 동림이 향안을 위로하며 과거로부터 나아갈 수 있게 힘을 붇돋기도 한다. 동림과 향안이 마주할 때면 뭉클해지는 이유다.

 

 

극을 이끌어가는 향안 역의 제이민, 동림 역의 김주연의 연기는 100분을 단 1초로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제이민은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향안부터 환기를 파리로 이끄는 당찬 아내, 다시 시작되는 사랑 앞에 망설이는 모습까지 구부정한 자세, 힘없는 목소리, 과거의 자신을 토닥이는 애처로운 눈빛까지 김향안의 생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결혼백서’로 대중에 얼굴을 알린 김주연은 이상을 처음 만난 설레는 표정부터 일본으로 그를 떠나보낸 뒤 고된 하루를 살아가는 지친 얼굴까지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다. 이상과의 헤어짐을 결정하는 순간에는 그 절절함이 관객에게 모두 전해진다.

 

 

소극장 뮤지컬의 장점을 살린 무대 연출도 돋보인다. 책상, 책꽂이, 서랍 등 간소화된 소품들은 관객이 배우들의 연기에 시선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부족한 부분은 무대 영상으로 대체됐는데, 반짝이는 별과 형형색색의 화면은 이상의 시와 환기의 그림을 나타내며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공연은 11월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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