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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사랑의 탑


 

마이산(馬耳山)에 가서 이갑용 처사가 쌓았다는 돌탑 앞에 섰을 때다. 이 탑을 쌓은 노인은 전국을 다니며 돌을 골라 가져다 탑을 쌓았다고 한다. 어떤 의미를 두고 쌓았기에 탑은 폭풍 번개에도 끄떡없이 견디며 오늘을 가고 있을까. 말 귀를 닮았다는 산에 이 탑을 쌓은 속 깊은 뜻은 무엇일까? 를 생각하다 ‘나는 지금 무엇 하며 살아 왔는가?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글 짓는 것 제하고는 어떤 재주도 능력도 좋아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자발적 소외와 자가 격리 같이 스스로 외로워했고 고통스런 생각 끝에 손짓의 언어들을 원고지에 옮겨 심는 생활이었다. 혼자서 그늘진 곳에 우두커니 밀려나 외로움을 타는 슬픈 정조(情操)를 지닌 삶이었다. 그때였다. 이갑용 처사가 돌탑을 쌓았다면 작가는 글탑을 쌓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탑과 글맷돌’ 생각이 가슴 속 위로나 되는 듯 내 품에 안기었다. 이갑룡 씨가 각처의 돌을 문장의 언어나 되는 듯 옮겨다 탑이란 돌의 시를 쌓아 올렸다면, 작가는 언어를 ‘돌’ 삼아 문장의 탑을 쌓아야 할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언어라는 돌을 맷돌에 갈아서 밀가루를 만들어 빵과 과자를 빚어서 사람들에게 착한 양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의 첫 직장은 어느 군청 건설과 직원이었다. 20세 갓 넘어 공채로 들어갔기에 나이가 어리다고 윗사람들에게 귀여움 받고 재밌게 근무할 때다. 점심을 먹고 창가 의자에 앉아 햇볕을 즐기고 있는데 지나가던 L양이 내 구두를 보고 “김 주사님 구두 멋있네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되물었다. “구두는 멋있어 보이고 사람은 안 보이느냐?”고. 나의 그 멘트로 그날 저녁 우리는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게 되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후 나는 그 직장을 본의 아니게 그만 두고 학교에 다닐 때 그 L 양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착하고 잘 웃던 그녀가 심장수술을 받고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는 그때 그런 아픔이 있다면 더욱 그녀를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배려와 끝까지 책임감이 따르는 가슴의 공명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관계를 보자면, 톨스토이는 중년 이후 지겹도록 싸운 아내가 자기가 죽었을 때 자기 시신에 손도 대지 못하게 유언을 할 만큼 아내를 싫어했다. 링컨의 아내는 남편이 극장에서 총 맞아 죽을 때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소크라테스 또한 아내 크산티페에게 온갖 모욕을 받으며 살았다.

 

식구는 20년 이상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한다.

 

시(詩)는 혼자된 순간 슬픈 시간과 고독한 공간의 노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날씨 쌀쌀해지니 낙엽 구르는 소리에서 세월 가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외로움도 즐겨야 한다고 했지만 어쩐지 가슴이 뻥 뚫린 느낌에 푸석푸석해지는 몸을 의식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마이산 돌탑 앞에 서서 나의 글탑을 생각하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돌탑이나 글탑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사랑으로 쌓은 ‘사람의 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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