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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자기성찰이었다

나채훈 삼국지 리더십 연구소장/역사소설가

  • 등록 2022.11.06 12:59:41
  • 15면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윤희근 경찰청장이 사과하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를 인용했다.

 

읍참마속의 원래 글귀는 ‘휘루참마속’, 그야말로 눈물을 뿌리며 아끼는 인물을 참수형에 처했다는 의미다.

 

막중한 임무를 띠고 투입된 현장 상황에서 서툰 책상머리 방식으로 자기 고집을 버리지 못한 지휘관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이 얘기는 삼국지 무대에서 지혜와 충정, 청렴의 상징처럼 꼽히는 제갈공명의 탄식과 자신에 대한 질책이 담겨있다.

 

당시 제갈공명은 “아아, 선제(先帝: 유비)의 밝으신 영명함을 내 따르지 못했도다” 하면서 자신을 책하고 눈물을 뿌렸다. 진정성에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의미도 남다른 것이었다.

 

제갈공명이 유비의 영명함을 떠올린 데는 까닭이 있었다. 박제성(영안궁)에서 운명하기 직전, 유비는 마속을 두고, “장차 중요한 일을 맡기지 말라. 말을 번드레 하지만 실천 능력에서는 믿을만한 인물이 아니다”고 제갈량에게 당부했던 것. 따지고 보면 중국 역사에서 제갈공명은 희대의 천재적 인물이고, 유비는 황제가 되었다고 하지만 범용한 수준의 인물 아닌가.

 

이번 참사에서 책임 소재를 묻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다고 말단 경찰관이나 참사 현장인 용산의 경찰서장을 읍참마속 하겠다고?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미 용산경찰서장은 대기발령됐고, 수사의 칼끝은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8곳을 겨냥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를 제대로 찾아내려면 마땅히 그래야겠고, 나아가서는 시민들의 112신고가 어찌하여 현장 대응으로 연결되지 않았는지 정밀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누굴 아꼈는지 모르겠으나 ‘부하들에게 눈물을 머금고 처벌을 감행하겠다’는 그 얘기는 안타깝게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의 극치다. 차라리 ‘석고대죄하겠다’고 했다면 참사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나 그 유족들에게 기본적인 예의가 되었겠으나.

 

이번 참사를 두고 윤 경찰청장만 헛손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한 총리는 외신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이태원 참사를 ‘Incident(사고)’로 표현하며 정부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해 웃으면서 답했고, 이에 영국 기자가 정색하며 이를 ‘Disaster(재앙)’라고 고쳐 글을 올렸다는 보도가 나온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우발적 사건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고, ‘재앙’은 많은 이에게 고통을 준 재해라는 뜻이다. 사고냐 재앙이냐 하는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혹여 외국에 나가있는 우리 국민 여럿이 목숨을 잃는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해당 국가의 총리가 웃으면서 대답하고 정부가 그런 사고 하나하나에 책임지는 것이 온당하느냐의 태도를 보인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 것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읍참’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

 

그 일이 벌어졌을 때, 삼국지연의를 다시 펼쳐보면 마속에 대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는 야전 경험이라고는 없는 ‘지상병법(紙上兵法)’의 참모 정도에 불과했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자격부터 미달이었다. 아니 결코 그 자리에 앉혀 대국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중책에서 뭘 해볼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해불가의 언행들을 나열하면 끝이없다. 행정안전부장관은 “경찰, 소방 인력 배치부족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다가 등 떠밀려 사과했다.

 

다시 묻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 참사를 겪으면서 그래도 뭔가 교훈을 얻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태원은 많은 인종과 국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또 그런 문화적 축적이 있는 곳이다. 무슬림 사원도 있고, 성소수자 클럽도 여럿 있으며, 외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무리 사회에서는 별천지라 할 수 있다. 자유와 개방성이 가장 넘친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태원 길에는 인종주의적이고 획일적인 분위기가 우리 사회 전체에서 가장 없다고 할 수 있다.

 

‘읍참’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헤아리지 않고 그저 고사성어의 한 끝자락을 인용하여 적당히 넘기려는 자세는 정말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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