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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윤희순

 

 

그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었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25년 동안 시아버지, 남편, 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같은 시기에 3대가 일심동체로 국권회복에 헌신한 집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위대함, 또는 특별함에 비추어 기록도 빈약하고 훗날 우리 정부가 그에게 내린 훈장은 너무나 초라했다. 모욕적이다.

 

희순은 1860년(철종 11년) 꼿꼿한 선비 윤익상의 장녀로 지금의 남산 밑 회현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생모와 다정한 계모를 연이어 잃는 아픔을 겪는다. 열 여섯 살에 아버지의 친구인 유홍석의 아들 제원과 결혼했다. 시댁은 강원도 춘천을 대표하는 선비집안이었다. 한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한 친구들이 사돈이 된거다.

 

스승은 위정척사(衛正斥邪) 그룹의 우두머리였던 화서 이항로였으며, 그 제자들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위쪽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의병을 거병했다. 제천에서 일어난 의암 유인석과 춘천의 유홍석은 6촌간이다. 

 

1895년. 왜놈들이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 을미사변에 이어서 단발령이 포고되었다. 전국에서 의병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났다. 희순은 춘천지역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이 주축이 된 의병대를 뒤에서 도왔다. 세탁, 취사, 모금, 화약과 탄약제조 등이었다.

 

왜놈 대장 보거라!
조선의 안사람이 경고한다.
우리나라 욕심 나면 구경이나 할 것이지
우리 임금을 괴롭히고 국모를 살해하고도
살아서 가기를 바라느냐.
이 마적떼 오랑케야
좋은 말로 할 때 용서를 빌고 떠나가라.
우리 조선 사람들 화 나면 
황소호랑이와 같으니라.
후회하기 전에 
너희 나라로 가거라.
좋은 말로 달랠 적에 
너희 나라로 가거라.
왜놈 대장 보거라.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

조선 선비의 아내 
윤히순

 

이 경고문과 '안사람 의병가' 등 그가 남긴 16편의 글 ㅡ노래 가사 8편, 경고문 4편, 기타 자전적 기록들ㅡ에서 본인의 이름 '윤히순'을 밝힌다. 잡혀가더라도, 당당히 응할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웃들에게는 "나는 이렇게 목숨을 내놓았다. 그대들도 동참하라"는 호소다. 결국 30여 명의 '안사람 의병단'을 결성, 의병대장이 되었다.

 

왜놈들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1907년에는 고종을 폐위하고 군대를 강제해산했다. 1910년 8월 29일 마침내 국권을 강탈했다. 선비들 일부는 자결하거나 숨고, 상당수는 이듬해 1911년부터 왜놈 지배를 거부하고 만주와 간도로 망명한다. 

 

이 때 희순의 가족도 떠난다. 시댁 유씨집안과 사돈네 집안 합하여 45세대가 함께 망명한다. 자리 잡자마자 600여명의 부대로 조선독립단을 결성한다. 윤희순 가족 전원이 전사였기 때문에 '가족부대'로 불리웠다. 윤의사는 일흔이 넘어서도 군사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노학당(老學堂)'이라는 학교를 세워 망명객들의 자녀를 취학시켜 독립운동가들을 양성한다.

 

큰 아들 돈상이 독립단 활동으로 종횡무진 하던 중에 제사 지내러 들렀다가 왜경에게 잡혔다. 밀고였다. 한 달 동안 고문을 당했다. 나오자마자 세상을 뜬다. 희순도 지쳤다. 그날부터 곡기를 끊고 자서전 '일생록' 집필을 마친 뒤,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1935년 8월 1일. 아들이 죽고 열흘만이다. 76세. 자결이었다.

 

첨언:침략전쟁은 무한의 창공을 날으는 독수리들을 새장에 가두는 일이다. 그 점에서 왜놈들은 금수만도 못한 족속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흉포한 패륜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했다. 살광(殺光), 소광(燒光), 탈광(奪光)이 이른 바, '三光정책'이다. 여기서 '광(光)'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이란 뜻이다. 

 

'殺光'은 조선이든 중국이든 그 어디든 공격할 때,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어린애건 노인이건 그 누구든 가리지 말고 닥치는대로 '순식간에' 죽여버리라는 말이다. '燒光'은 어딜가든 먼저 목표지역의 집들을 불질러 그 동네 전체를 '번개치듯' 태워버리라는 거다. '奪光'은 놋수저든 금괴든 송아지든 강아지든 그 뭣이든, '삽시간에' 약탈하라는 말이다. 일본 주류는 여전히 이 정신세계  위에 서 있다. '3光작전'은 폐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