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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윤의 좌충우돌] 카르마 요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너의 노동은 0원. 너의 노동은 자원봉사. 너는 과로하는 백수”

 

나의 실상이다. 나는 ‘무급’ 마을활동가이다. 그 시작은 이랬다. ‘아이 셋을 데리고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없을까?’

 

세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과 병행하면서 점차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영역으로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데리고서 하려던 일은 아이를 데리고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알아봤더니 자녀를 맡기려면 ‘맞벌이 부부’라야 한단다. 일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재직 증명서’와 ‘의료보험 납부 확인서’를 제출하라는데. 그건 뼈 빠지게 일해도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문서였다. 그때 처음 무급으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돈으로 노동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서 돈을 받지 않는 노동에 ‘공권력’이 발부하는 성적표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증명서와 확인서였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마을활동은 육아와 가사노동과 함께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에 속하고 나는 주구장창 그림자 노동을 해왔다. 임금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노동, 그것도 아니면 열정을 구실로 강요된 저임금 무임금 노동착취인 열정 페이(熱情Pay) 그 언저리쯤으로 간주되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나는 내 노동이 이렇게만 정의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을활동은 임금노동과는 다르다. 고되기만 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우리 꿈과 대립하지도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혹독한 삶과 극한 경쟁에 균열을 내고 느슨한 연대와 느린 속도와 느긋한 태도로 숨 쉴 틈을 만드는 작업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공공(公共)의 행복을 이루고자 하는 활동이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마을 활동은 노동보다 인도 “카르마 요가”에 가깝다. 카르마 요가란 자신의 삶에서 실천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가다듬어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요가의 갈래이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수행의 방법이다. 공적(公的) 임무에 집중하되 보상에서 멀리 떨어진 활동이다. 《깊이 생각할 것》, 《순수한 동기로 할 것》, 《의무를 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 《결과는 잊을 것》, 《봉사일 것》, 《모두를 위한 일일 것》, 《학습이 따를 것》이 원칙이다.

 

물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길을 잃고, 기우뚱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요가의 본질 아닐까. 중심을 잡으려 애쓰며, 여기까지인가 싶다가도 ‘딱 한 걸음만 더!’ 가다보면 새로운 나날들과 미래의 약속에 다다를 것이다. 카르마, 그러니까 내가 사는 날까지 나도 모르게 쌓여가는 ‘선한 업(業)에 대한 믿음, 나를 만들어가는 감사가 거기에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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