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믿으세요. 제 논리적인 사고를 그냥 믿으시면 됩니다.”
도시락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딸 미사토와 단둘이 살아가는 야스코. 폭력적인 전 남편 토가시를 피해 힘겹게 도망쳤건만, 그가 또 다시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토가시가 어린 딸에게 마저 위협을 가하자 야스코는 이를 말리다 결국 전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야스코와 미사토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한 그때, ‘띵동’ 초인종이 울린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는 옆집남자 이시가미가 찾아온 것. 평소 야스코를 좋아했던 이시가미는 그녀를 위해 이 살인사건의 수습을 떠안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용의자 X의 헌신’은 공연 시작 10분도 채 되지 않아 사건의 범인을 밝힌다. 관객들은 살인 사건 범인을 알아내는 것이 아닌 다른 물음표를 풀기 위한 여정에 동참해야 한다.
며칠 뒤, 강변에서 토가시의 시신이 발견되고 경찰들은 토가시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던 야스코를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올린다. 하지만 딸과의 영화관람, 노래방 데이트 등 야스코는 이상하리만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 영화표도 있고, 사건 발생 추정 시간에 CCTV에도 찍혔다.
그럼에도 찜찜함을 지울 수 없던 형사 쿠사나기는 천재 물리학자인 친구 유카와에게 도움을 청하고, 유카와는 야스코의 옆집에 자신의 대학동기였던 수학 천재 이시가미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유카와와 숨기기 위한 이시가미의 대결로 향해 간다.
그 치열한 두뇌싸움 속에서 드는 유카와의 의문들 ‘범인의 의도는 대체 뭘까’, ‘그렇게 논리적인 친구가 왜 그녀와 연관된 걸까’. 답은 하나, 바로 ‘사랑’이다.
이시가미는 토가시의 시체 처리를 맡고, 치밀한 알리바이로 경찰조사에 대한 대응을 일일이 알려주고, 야스코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며, 심지어 야스코의 스토커임을 자처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관객들은 이시가미가 짜놓은 사건의 함정들을 추측해가는 한편, 과연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게 된다.
그 몰입감은 배우들의 연기로 전해진다.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과 담담한 말투로 일관하던 이시가미의 절규, 불안함 속에서도 애써 밝은 척하며 일상을 견뎌내는 야스코, 이 둘 사이를 오가며 작품의 무게중심을 잡는 유카와. 세 사람의 조화가 110분을 밀도 있게 만든다.
또한, 섬세한 연출로 배우들의 연기에 힘을 싣는다. 사각형의 투명한 칠판 같은 오브제와 스크린 몇 개만으로 무대는 이시가미와 야스코의 아파트가 되고, 수많은 공식이 쓰인 유카와의 교수실이 되기도 한다. 스크린을 통과한 은은한 조명이 극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군더더기 없이 여백으로 채워진 무대가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공연 입장 전 로비 바닥을 살피면 이시가미가 만든 알리바이의 단서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를 기억하며 어떤 속임수에 이용됐는지 추리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품은 오는 29일까지,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시가미 역에 최재웅, 김종구, 조성윤, 유카와 역에 이지훈, 박민성, 오종혁, 야스코 역에 김지유, 안시하가 출연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