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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식 칼럼] ​사우디-이란 화해 사건이 의미하는 것

 

 

지난 3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였다. 이로써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을 지렛대로 멀어져가는 미국의 주의를 환기하고, 총력을 다하여 추진하고 있는 경제 개혁의 장애물인 안보 위협을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이란은 최근의 시위로 불안한 국내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서방의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파할 계기를 마련하였다. 예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파키스탄 등에서도 양국이 관여하였던 내전이 종료되거나 갈등이 완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과거 수십 년 동안 보아 왔던 미국의 역할을 중국이 대신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평화 중재자로서 역할을 완수한 이 사건은 중국의 외교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사례다. 향후 중국의 일대일로는 이란-페르시아만-사우디아라비아-홍해-아프리카 통로와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지중해 통로를 통하여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3월 29일 상하이협력기구에 ‘대화 파트너’로서 참여를 결정하였고, 올해 2월 이라크가 허용한 원유 거래의 위안화 결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이 보여준 새로운 외교 모델, 즉 ‘공정 중재 모델’은 중재자의 공정성에 대한 당사자의 공감을 바탕으로, 당사자가 처한 지경학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대화를 통하여 해결책을 찾는다. 이 모델은 이데올로기적 맹목성, 선악 이분법, 경제제재, 기축통화의 무기화, 군사적 위협 등을 앞세우는 ‘강압 모델’과 차별화한다. 이 모델의 확산 가능성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겉으로는 평화 합의를 지지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스라엘도 숙적 이란을 겨냥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안보 연대 구상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을 들여왔던 아브라함 협정과 I2U2(중동판 쿼드)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 1980년 걸프만을 미국의 배타적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으로 선언하였던 카터 독트린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우선 중동 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완화됨으로써 원유 수송로의 안전성이 제고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페트로 위안의 현실화로 인한 원화 환율의 위안화 동조화 문제와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비책이 요구된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이라는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미국에 370억 달러에 달하는 보잉 여객기의 구매를 확약하고 아브라함 협정에도 가입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헤징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는 중견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주의적 균형 외교의 모범 사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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