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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의 아르케] 민주주의는 신기루인가?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바야흐로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다.”라는 말로 화두를 장식했다. 민주주의가 반듯한 모습으로 작동한 적이 있었던가? 반듯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된 게 없다.

 

처음부터 민주주의는 그리스의 귀족과 상인들, 영국 마그나카르타의 주역인 봉건영주들, 시민혁명 이후 자유와 국가권력을 독차지한 부르주아 계급 등 기득권 집단의 전유물이었다. 유럽에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부(富)에 비례했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소외된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여성은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하며 투쟁했고, 그 결과 이만큼이나마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이다.

 

민주화의 길은 아직도 멀다. 대통령은 제왕의 권력을 휘두르고, 대의민주주의를 담당하는 국회의원은 최고의 특혜에 안주하려고 한다. 칼자루를 쥔 그들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어도 개선의 방향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선출된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정치, 민주주의의 실상이다.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각박한 현실에 절망하지만, 민주주의 제도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샌델이 주목하는 것은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능력에 따라 대우하는 게 공정할 것 같지만, 심각하게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양극화가 극심해진 현실에서 (명문대학) 학사 학위가 없는 하위 50 퍼센트의 미국인들은 상위 1 퍼센트의 부자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미국의 주류 정당과 명문대학 출신의 집권 엘리트들은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세습귀족제로 굳어져가고 있는 능력주의는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을 낳는다. 그 결과는 포퓰리즘적 저항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분노한 대학생들의 저항이 촛불혁명으로 확산되었다. 촛불의 위력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공언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정책으로 승화되지 못한 이 다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했던 인천공항 사태라는 뜻밖의 저항에 직면했고, 국론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문재인 정부는 능력주의의 해결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지금의 참담한 현실이다.

 

문제는 젊은 청년들이다. 이렇게 불공정하고 능력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좌절한다. 좌절한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회피하는 사이에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출된 권력의 탐욕은 그칠 줄 모르고, 주류정당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총선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이런 대한민국의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은 노인들만 남은 농촌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허상이고, 위기에 처한 것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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