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의 진정성을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일까. 지난 8월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질의에서 택시비가 얼마냐는 질문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천원쯤 되지 않았나요”라고 답변했다. 1000원은 1994년 기본요금이고 지금은 4800원이다. 택시를 타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할 국무총리라면 적어도 현재 기본적인 생활물가 정보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한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3월 30일, 정무직·1급 이상 고위공무원·지자체장·광역의회의원·교육감·국립대 총장 등 재산 공개대상자 2,037명의 정기 재산 변동사항을 공개했는데, 신고재산 평균액은 19억4625만 원이다.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의 평균 재산이 문재인 정부 때보다 20% 가량 더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76억9천725만원, 한덕수 국무총리는 85억1731만 원이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3월 31일 공개한 ‘2023년 국회의원 정기재산변동신고’에 따르면 재산공개 대상인 국회의원 296명 중 재산이 500억 원 미만인 292명의 평균 신고 재산액은 25억2605만 원이었다. 지난해(23억8254만 원)보다 1억4351만 원 늘어났고, 재산공개 대상인 의원 296명 중 87.2%(258명)가 지난해보다 재산이 늘었다고 신고했다. 돈이 돈을 버는 논리가 정치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29년 전 택시 기본요금인 “천원쯤 되지 않았나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한국 정치는 현재가 아닌 먼 과거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라고 하면 스펙트럼이 넓으니까 정치적 성향을 걷어내고 삶의 현장에서 살고 있는 ‘서민’이라는 개념으로 말해 보겠다. 서민들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부조리, 불평등, 불공정 등 잘못된 구조를 바꾸기를 원하고 있는데, 이를 정치가 제대로 응답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응답하지 않는 정치를 하는 동안 가장 고통을 겪는 대상은 결국 서민들일 수밖에 없다. 서민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들처럼 재산이 늘어나지 않는다.
외할아버지는 열여섯 살에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다 목숨 걸고 도망쳐 간신히 살아남으셨고, 스무 살 청년 우리 아버지는 국가의 부름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다행히 살아남으셨다. 두 분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서 ‘국가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잘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고 채 상병처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군대에 입대하여 상사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돌아오는 건 결국 죽음뿐이라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고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국민의 진짜 삶을 모르는데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희망하는 것은 헛된 꿈일까.
에리히 프롬은 ‘희망의 혁명’이라는 책에서 ‘생명애(biophilia)’를 강조했다. 생명이 처한 위험을 온전히 인식할 때 우리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명애를 바탕으로 우리는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 즉 희망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희망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다. 우리 정치가, 우리 사회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하는 인간이 될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지 위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