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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범의 미디어비평] 수험생을 외면한 수능보도

 

킬러(killer)는 살인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의미가 무시무시해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할 용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 대상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능에서 정답률이 극히 낮은 문항을 ‘킬러 문항’이라고 언론이 써왔다. 대통령이 ‘킬러 문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유명세를 치뤘다. 


지난 6월 15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던 윤 대통령이 수능의 어려운 문제를 지칭해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했다.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사업이 카르텔이냐”고도 했다. 특유의 과한 용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교육부 대책이 이어졌다. 이 장관은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은 수능 관련 이슈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부와 총리실은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사에 착수했다. 평가원장은 나흘만에 사임했다. 


5개월이 지난 11월 16일, 2024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다. 언론은 시험난이도를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국·영·수 다 어려웠다’는 기조로 보도했다. 정문성 출제위원장은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했고,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변별력을 확보하도록 출제했다”고 브리핑했다. 내용은 빠짐없이 기사에 담겼다. ‘킬러 문항’을 잡는 교사단이 가동됐고, 출제진서 ‘카르텔 교사’도 다 뺐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의 지시가 완벽하게 이행되는 듯했다. 


수험생들은 전혀 달랐다. 대부분 언론이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았으나 ‘불수능’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불수능’을 넘어 ‘용암수능’으로 불렸던 2022학년도 수능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조선 칼럼은 ‘이어령도 울고 갈 국어’, 중앙일보는 ‘망국 공범 불수능’이란 표현을 써가며 어려운 수능을 연달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채점결과를 전하는 기사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했음에도 ‘불수능’이어서, 만점을 받은 학생은 1명이었다고 했다. ‘킬러 문항’이란 용어를 애써 피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9일자 1면 머릿기사에 ‘킬러 문항’ 용어가 제목으로 등장했다. 킬러 문항에 지방 학력이 저격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방에서 상위권 학생은 대폭 줄어들고 하위권 학생은 늘어났다는 기사였다. 대통령의 지시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을 직격했다. 프레시안은 6월 윤 대통령이 수능출제에 직접 개입했던 것이 책임 부메랑이 돼 돌아온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여러 언론이 수능 만점자와 표준점수 전국 수석이 다닌 강남의 학원 등록금이 월 300만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만점자는 공교육만으로 수능 문제를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6월 대통령 발언과 교육부의 발표 내용을 ‘수능이 쉬워질 것’으로 받아들인 수험생들은 어떤 마음일까. ‘킬러 문항’은 없었는데 ‘불수능’이었다는 언론보도에 수긍할까? 동의어를 수험생을 대상으로 말장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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