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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침으로 범벅이 된 동상

 

1.

문화인류학자 타이거와 폭스(Tiger & Fox, 1971)는 ‘보은(報恩)의 망(web of indebtedness)’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타인에게 은혜를 받으면 그것을 되갚는 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이 원칙이 노동을 분화시키고 재화와 서비스의 상호 교환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거다.

 

사냥으로 생존을 유지하던 구석기 시대가 대표적 사례다. 발 달린 사냥감이 필요한 시기에 딱 맞춰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먹거리 획득이 부정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잡은 짐승 고기를 자기와 가족만이 독식한다 치자. 그 같은 습관을 반복하면 나중에 자신이 굶을 때 주위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봐서 무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는 거다. 주어진 호의와 선물을 되갚는 후성유전학적 DNA가 호모사피엔스에게서 우세를 점한 이유다.

 

이런 행동이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문화권에서 미덕으로 전승되는 것이 그 때문이다.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준 제비나 ‘은혜를 갚은 까치’ 같은 우화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보은은 커녕 은혜를 악으로 갚는 자들도 드물게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런 자를 말종이라 부른다.

 

2.

이완용을 보자. 기록에 따르면 그도 처음부터 매판적이지는 않았다. 대한제국의 숨구멍이 아직 살아있을 때는 개화독립파로 행세했다. 독립협회 2대 회장을 지낼 정도였다. 그랬던 자가 어떻게 만고역적의 대명사로 변절했을까. 탐욕 때문이었다. 개인적 부귀와 영달을 모든 가치의 앞에 두었기 때문이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도리와 사회적 책임감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이다.

 

이런 모습을 가장 자주 보는 곳이 정치권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연속해서 나타난다. 스스로 힘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후 당을 옮기는 경우는 양반이다. 최악의 케이스는 아무 대가도 안 받고 자신을 국회로 보내 준 정당과 이념에 침을 뱉고 거꾸로 칼을 꽂는 자다.

 

내세우는 명분이 뭐든 간에 이런 인간의 영혼을 움켜잡은 것은 극단의 기회주의다. 정치는 사회적 재화의 부스러기를 훔치는 ‘욕망실현’ 행위가 아니다. 공공적 목표를 지닌 지향이어야 한다. 이 같은 자가 제 뜻을 실현하도록 놔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변절자가 남보란 듯 성공하는 나라는 뿌리부터 썩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3.

겉으로만 보면 이 자들은 기세등등하다. 역설적으로, 마음속에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 주눅을 감추기 위해 거꾸로 태세를 공격적으로 전환한다. 구국의 결단이라도 내린 듯 오만방자한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은 결코 괜찮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으면 중국 항저우에 한 번 가보라. 그 도시의 호숫가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침으로 범벅이 된 동상이 있다.

 

900여 년 전 침략자 금나라와 싸운 남송의 구국 영웅 악비(岳飛). 그의 묘를 바라보며 무릎 꿇은 자세로 전시해놓은 천하 간신이자 희대의 배신자 진회(秦檜)의 동상이다. 관광객들이 경멸의 침을 하도 뱉어서 ‘침을 뱉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머리 위에 붙어있을 정도다.

 

인류는 진화의 과정에서 이런 족속들이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세월의 시계가 아무리 느리게 흘러도 언젠가는 그들을 응징한다. 당대를 넘어 때로는 수백 년 후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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