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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봄날은 가고 있다

 

일요일 아침, 사색의 숲 속을 걷고 싶어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그 순간 같은 아파트 10층에 살면서 중형자동차 몇 대를 소유하고 개인 사업을 하는 김 사장을 만났다. 그는 오늘 아침 3시 30분에 일어나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 기사의 집 앞에 자기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 자동차 열쇠와 행선지를 알리고 오다 보니 이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바쁘게 할 일이 있어 ‘당신의 봄은 지금입니다’하고 돌아서 내 길을 걸었다.

 

보고 싶은 얼굴은 교회에 가서 보고 그리운 얼굴은 자연의 표정 속에서 읽는다.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의 표정을 보면서 어릴 적 농촌의 안방에서 어머니 젖을 물고 잠들었을 내 모습을 기억의 저장고에서 발굴해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런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읍내의 백합사진관으로 가서 중학생 교복을 입고 촬영한 사진을 추억 속에서 소환해보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 속 시간들과 가정의 역사를 정리하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정리하듯 글을 쓴다.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의 운명적 스타일은 행보다는 불행을, 웃음보다는 슬픔을, 억지 부려가며 소유하기보다는 물러서서 바라보는 길을 선택해 왔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좀 더 물러서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

 

앞 노랫말은 ‘물방아 도는 내력’이고, 뒤 가사는 ‘봄날은 간다’이다. 나는 이 두 노래로 마음 달래고 위로하며 꽃 시절을 보냈다.

 

계간지 '시인세계'가 국내 유명 시인 100명에게 ‘좋아하는 노랫말’을 물었다. 그런데 1953년 백설희가 부르고 손로원 씨가 쓴 '봄날은 간다'가 1위였다. 듣거나 부를 때 까닭 없이 눈물이 나는 노래 '봄날은 간다'는 옆집 매형이 장가 와서 불렀던 노래여서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명곡이다.

 

시간과 세월과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들에게 흘러가는 봄날은 비참한 일이다. 당신이나 나나 인생의 봄날이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부르면 해장국에 술꾼의 속이 풀리는 것 같은 정감에 굳건한 감흥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봄날은 간다'는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가수 백설희가 처음으로 불렀다. 그리고 한국의 정상급 가수 50여 명이 자신의 창법으로 부른 유일한 노래이다. 그중 나는 가슴 속 슬픔을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정한을 눈(雪)처럼 뿌려대는 장사익의 노래를 좋아한다.

 

'봄날은 간다'의 연분홍치마는 작사가 손로원이 1945년 금강산 계곡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바친 노래이다. 손로원은 부잣집 외아들로 조선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살아생전의 어머니는 “로원이가 장가드는 날 나도 열아홉 살 시집올 때 입었던 연분홍치마와 저고리를 장롱에서 꺼내 입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홀로 세상을 떠났고 로원이는 불효자의 한을 '봄날은 간다'는 노랫말에 새기며 한없이 울었다고 전해진다.

 

봄은 계절의 출생이요 출발이다. 글 첫머리에서 말했던 우리 아파트 김 사장이나 나나 우리들 인생의 봄은 항시 지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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