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계절별로 옷을 가지고 있다. 드레스룸이 아주 큰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옷들을 매일 사용하는 옷장 속에 모두 걸어놓을 수 없어서 계절에 맞는 옷 이외에는 상자나 드레스룸의 자주 사용하지 않는 구석에 보관한다. 나 또한 그래서 철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옷장을 열어보면 그 주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옷을 정리해 놓은 스타일이나 옷의 형태, 컬러, 브랜드, 수량 등등 옷장에는 옷의 주인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올해는 여름이 너무 일찍 와버려서 겨울과 이른 봄 옷들을 모두 꺼내고 일찍이 여름 옷들을 옷장 메인 옷걸이에 걸었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을 하기 위하여 옷장 문을 열고 무엇을 입을까 고르는 일상적인 행동을 하다가 문득 옷장에 걸린 옷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 동안의 나의 삶을 감싸고 기쁜 일, 슬픈 일, 모든 일상을 함께 한 옷들이 다시 옷걸이에 걸려 등과 배를 맞대고 차분히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럽기도 하고 기특하게도 느껴진다. 하루를 열심히 달리고나서 깨끗이 세탁되어 다시 내일을 위해 빈 마음을 다독이는 것만 같다 생각하니 옷 한 벌도 거룩하게 여겨진다. 새 날이 밝으면 다시 나는 옷을 선택하기 위하여 옷장을 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옷이 많은데도 늘 마땅히 입을 옷이 없다고 여겨지고, 이 옷들 중에서 즐겨 입는 몇 벌을 제외하고는 늘 옷장만 차지하고 있는 옷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나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며 후회와 반성을 한다. 입지 않은 옷을 버리지 못하는 습성과 입지 않을 옷을 너무 함부로 구입하는 습성에 대하여…
단지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옷들은 이미 그 주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나의 체취, 취향, 내가 좋아하는 색깔, 나의 몸집의 크기,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에 약한지 등등 옷은 사람의 겉을 감싸지만 이렇게 수많은 내면의 정보도 함께 드러낸다. 그래서 누군가의 옷장을 열어보는 것은 마치 그 소유자의 마음을 열어보는 것과 같다.
선호하는 옷들은 해마다 낡아져 해지기도 하고 색이 바래기도 한다. 옷장을 정리하는 때에는 허름한 옷들을 버리기 위해 큰 박스에 분류해 놓는다. 내가 즐겨 입던 티셔츠, 소매 끝이 낡은 옷을 버리려다 가만히 쓸어본다. 버려지는 순간까지 한 사람의 삶의 역사를 감싸안은 그 생이 어찌 누추한 것일까? 갑자기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도 누군가 한 사람의 삶을 감싸며 그의 체온을 따뜻하게 덥히고 그의 뜨거운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의 웃음과 눈물을 모두 받아주다가 쓸쓸히 버려진대도 기꺼울 수 있을까? 옷 몇 벌을 버리며 나는 숙연해져서 마음으로 속삭였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그리고 고단하지만 행복할 오늘 하루의 시간을 함께할 옷 한 벌을 꺼내면서 나는 다시 마음으로 속삭인다. 그래, 오늘 하루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