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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성장과 성숙 그 너머를

 

1980년대의 은어로 여성들은 ‘돈키호테’를 좋아한다고 했다. 돈 많고, 키 크고, 호감이 가고, 테크닉 좋은 남자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사는 게 도무지 재미가 없고 흥미도 없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웃자고 한번 해 본 얘기다. 러시아는 전쟁 중이고 핵무기를 보유한 북쪽에서는 별별 괴상한 짓거리를 다 하고, 일본은 독도를 제 것이라고 그들의 교과서에 못 박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나라의 진정한 친구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라요 우울한 사회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혼자이고 경쟁자는 있어도 진정한 이웃은 없는 것 같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나이 든 분이 지상에 발표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는 헬스장을 다니면서 코치(PT)에게 ‘회원님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고 한다. 노년의 인정욕구를 새로운 삶의 길에서 맛보며 삶의 활력을 찾았다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말은 학원가에서나 체육인들이 신장과 근육을 이야기할 때나 썼다. 국가적으로는 5·16 군사 정부 시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부터 성장과 속도의 강조가 우리들 두뇌에 새겨져 강박관념 속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싶다.

 

나이가 많아지면 나라는 존재 자체 말고는 의지할 데도 기댈 곳도 없다. 그래서 내가 나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 나의 내면의 힘을 찾아 성장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아주 잘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남이 나를 찾도록 한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성장도 좋지만 옳은 길에서 열심을 다한 세련된 의식에서 드러나는 영혼의 성숙함은 또 다른 기쁨일 수 있다.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성숙함이 가져다주는 그 너머의 행복한 삶을 어찌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성장이네 성숙이네를 따지기 전에 스스로의 삶의 본질을 헤아려보며,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해 왔는가를 성찰해야 할 때다. 소설가 조정래는 아리랑을 집필할 때 지구의 세 바퀴 반을 돌 정도의 거리를 취재하러 다녔다고 했다. 작품의 영감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성취의 모태는 노력’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출가 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책이었다고 한다. 유일한 소유물을 차마 다 버릴 수 없어 서너 권만 챙겨가기로 마음먹고, 이 책 저 책을 뽑았다 꽂아 놓기를 꼬박 사흘 밤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법정은, 책에 대한, 재물에 대한,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 모두가 집착이긴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단순하게 살아야 제정신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이 너무 거칠어지고 국민 정서가 안타깝다. 학벌의 서열과 자본서열이 점점 더 빈틈없이 일치하기 시작한 지 오래이다. 거기에서 오는 영향인가 자본과 학벌과 경쟁에 밀리다 보면 성실 근면을 밑천 삼던 과거 세대는 부끄러울 수밖에. 시대에 뒤진 젊은이들은 가정을 포기하고 2세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을 위한 정신적 영양제도 치료제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식을 낳지 않는 생물이 살아남을 길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작가로서 성장과 성숙 너머의 그 어떤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국민적 삶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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