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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통합의 리더십으로 현실정치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자

 

지금 정치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제22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개원구성부터 여야가 대치하여 정치의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당면한 국내외적 위기를 극복하고 국론을 통일하기 위한 정치리더십의 출현이 절실하다.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일제의 국권침탈기에 주로 활동하였던 탁월한 독립운동가요 혁명가이다. 그는 여러+정파의 의견을 아우르고 합의된 공론을 형성하고 문제해결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 예로는 1919년 9월 11일 상해에서 도산의 노력으로 통합임시정부가 탄생되었을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 이후 각 지역에서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그중에 노령 대한국민의회(3.17), 상해임시정부(4.11), 한성정부(4.23)가 대표적이다. 도산은 노령 국민의회의 세력, 한성정부의 명분, 그리고 상해임정의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여 3두정치론을 제기하면서 이들을 조정하였다. 한성정부가 국민대회를 거쳐 성립하였으므로 한성정부안을 바탕으로 하여 9월 11일 통합임시정부를 발족하였다. 다른 정파의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외적으로 외국 정부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단일 임사정부로 표방하게 되었다. 대내적으로 국민들의 독립투쟁을 집결할 수 있는 역량의 구축을 위해 여러 정파는 대동단결하여 통합된 임시정부를 도출해 냈던 것이다.

 

통합임시정부에는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총장 이동녕, 그리고 각 부에 외무 박용만, 군무 노백린, 재무 이시영, 법무 신규식, 학무 김규식, 교통 문창범(7부)이 선출되었다. 통합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것은 도산의 ‘낮아짐’의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해임정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로서 임정의 통합을 주도한 도산은 통합 이후에 임정의 노동국 총판(차관급)으로 낮아지기를 자청하였다. 이는 임정의 통합을 위하여 도산 자신을 희생했다고 할 수 있다. 오직 분열을 막고 통일된 통합임시정부를 성립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도산의 ‘통합리더십’이라고 부른다. 그의 통합리더십 기초는 도산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실천적 인격’에 있었다. 그는.무실과 정직을 생활화하였으며, “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마라”고 하셨다. 민주주의와 대공주의(大公主義) 정신을 중시하였다. 그의 뛰어난 조직능력은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나왔다. 그리고 안창호는 세계주의적 열린 지도력을 가졌다. 그는 열린 민족주의를 주장하였으며, 민족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보여주었다. 민족의 독립을 확신하였으며 복된 새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오늘날 혼란스러운 현실정치를 살펴보면, 100년 전 안창호의 통합리더십으로 풀어나간다면 희망의 정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정파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여러 정파의 이견(異見)을 조정하여 하나의 공론을 만들어 내는 뛰어난 정치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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