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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25 참전용사 이치전 옹…“74년 전과 다를 바 없는 軍 혼 나야”

흥남철수작전‧한강방어선전투 참여…휴전 뒤 일등상사로 전역
“야당 나쁘고, 여당은 무기력해…군사정권 때보다 더 힘들어”
“軍 문화 과거 비해 발전 없어…병사 다치는데 왜 생각 못해”
“상이군인에 국가 관심 필요…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

 

지난해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집중호우로 민간인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 1사단 소속 한 장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5월 23일에도 강원도 인제군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19세 훈련병이 군기훈련(가혹행위)을 받던 중 쓰러져 이틀 뒤 사망했다.

 

훈련병 사망사건은 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고, 순직 해병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실이 나서 수사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특검법이 재추진되고 있다.

 

군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국민의 공분을 불러왔고, 정치권에 전운을 감돌게 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경기신문은 6.25 전쟁 74주년을 맞아 참전용사를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생각과 군대 문화에 대한 변화를 들어봤다.

 

 

◇맹목적 충성 속 변화 없는 군 문화

 

채상병 특검법 재추진을 위한 입법 청문회가 진행되던 지난 21일 오후 수원보훈요양원에서 만난 이치전 옹(96)은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22살 나이에 수도사단 직할 백골부대에 입대한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흥남철수작전’, ‘한강 방어선 전투’ 등에 참여한 뒤 25살에 일등상사(현 원사)로 전역했다.

 

매일 신문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꼼꼼히 챙기는 그는 ‘채상병‧훈련병 사망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과거와 비교해도 변하지 않는 군 내부 문제를 지목했다.

 

“내가 복무할 당시에 채상병 사건이 있다고 해도 책임자도 사람이니 잘못이 없다고 발뺌할 거야. 철저히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처벌하는 사람이 처벌만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샅샅이 파헤쳐서 진상을 규명해야지.”

 

이치전 옹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당시 군 복무시절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군 문화는 과거와 비교해 변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나도 입대 후에 무리한 훈련을 많이 받았어. 당시 군에서 계급이 높은 사람들은 다 일본 군대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30~40명이 연병장에서 엎드려 뻗쳐 자세로 몽둥이로 맞기도 했어.”

 

최근 강원도 인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벌어진 가혹행위가 74년 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20㎏ 넘는 완전군장을 메고 얼차려를 시키는 것이 맞아?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하면 안 돼. 그렇게 훈련시키다 병사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왜 생각 못하나. 혼이 좀 나야해.”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 군사정권시절보다 현재가 더 힘들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승만 박사가 무리한 개헌으로 부정선거로 하야하고 나서 엄청난 정치 파동을 겪었었지. 그리고 박정희가 들어서면서 군사정권이 시작되며 나라가 시끄러웠어. 이후 전두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고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 둘을 구속시키며 세상이 시끄러웠어. 또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일으켜 세상이 또 시끄러워졌지.”

 

“지금은 어때. 여소야대라는 국회 의석수 때문에 법안을 발의해서 올리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하면서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잖아. 야당은 나쁘고 여당은 무기력하고. 지금 상황만 봐도 과거 군사정권을 겪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아.”
 

 

 

◇새옹지마, 일모도원

 

이치전 옹은 74년 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참전했던 기억도 짧게 회상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지금보다 보급 물자도 많이 부족했어. 100만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는데 국군은 10명 중 7명만 총이 지급됐고 나머지는 죽창을 들고 싸웠어. 또 전쟁 발발 당시 출전준비를 하는데 38선도 못가고 대항도 못해보고 산으로 도망가기 바빴어. 그렇게 이틀, 사흘 도망쳐 한강까지 도망갔는데 북한군이 서울로 들어와 한강에 조그만 보트 하나가 있어 전우 한 명과 널빤지로 저어 김포까지 도망쳤어. 그리고 부대에 복귀해 작전에 투입돼 복무했고 다리에 총상을 입고 대구육군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휴전 소식이 들려왔지.”

 

그는 자신에게 지급된 6.25 참전용사 정복을 기증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수원보훈요양원에는 이치전 옹의 정복이 전시돼 있다.

 

“참전용사로 정복을 지급받은 것은 고마운데 정복보다는 국가가 나 같은 상이군인에게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이군인 대분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야. 나도 이곳에 2년 4개월 가량 있었어. 나를 보살펴 주시는 분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그래도 국가가 나서서 나 같은 사람들을 좀 더 살펴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

 

인터뷰를 마치며 이치전 옹이 머무는 침대 머리맡에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회고록이 눈에 들어와 급작스레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기억에 남고 싶으냐고.

 

“일모도원,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 어떻게 기억에 남는 것도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질문해 봐야 답변하지도 못해. 여기서 아침에 운동하고 책보고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거든. 기자 양반, 노병은 죽지 않아 사라질 뿐이지.” 

 

 

[ 경기신문 = 옥지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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