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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의 예술맛보기] 몽환적인 색감과 표현의 화가, 마리 로랑생

마리 로랑생은…

 

 

마리 로랑생(1883~1956)은 프랑스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일생을 파란만장하게 살다가 세기의 로맨티시스트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여류 화가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화가였지만, 2017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성공적인 전시를 한 후 한국인에게도 사랑받는 화가가 됐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라 불린 때,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당시 그녀는 ‘세탁선’이라는 곳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연인 아폴리네르를 만나게 된다. 아폴리네르와 결별 후 그녀는 독일인과 결혼했지만, 곧바로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와 독일이 적국이 되자, 독일에도 프랑스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스페인으로 망명을 간다.

 

남편과의 5년 결혼생활을 청산한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와 그 후부터 죽을 때까지 파리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펼친다.

 

 

마리 로랑생은 초기에는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여류 화가로서는 드물게 입체파 화풍을 보여주었지만 그 경향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부드러운 터치와 은은한 색상의 화풍으로 옮겨갔다.

 

나는 회색과 분홍색 같은 파스텔톤의 마리 로랑생의 코코 샤넬의 초상화를 본 즉시 그녀의 그림에 매료되었고 더 많은 작품들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자, 재미있는 로랑생의 연애담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꿈처럼 몽글몽글하고 회백색의 여린 살갗이 만져질 것 같은 마리 로랑생의 작품 몇 점을 감상해 보자.

 

 

회색과 분홍색, 거기에 약간의 파란색이 더해진 파스텔톤의 그림은 로랑생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녀는 여성들을 주로 그렸으며, 꽃과 동물들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로랑생이 남자 초상화를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스페인 망명 시절 경험한 스페인 댄서들 그림을 파리로 돌아와 그렸는데 입체파의 기하학적 패턴과 차분한 색상이 어우러져 있고 역시 동물과의 교감이 잘 나타나있다.

 

 

마리 로랑생의 작품 스타일이 형성되기 전의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로랑생은 동성애적인 성향도 있었다. 그래서 작품에서도 여성들끼리의 성애적인 표현도 감추지 않았다.

 

 

공연을 하기 전 리허설을 하는 여자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다.

 

 

로랑생이 표현하는 여성들은 회색과 분홍색의 살갗에 유난히 까만 눈이 강조되어 있다. 표정은 대부분 차분하고 다소 우울하거나 슬픈 느낌이 든다.

 

마리 로랑생과 코코 샤넬

 

마리 로랑생과 코코 샤넬은 닮은 데가 많은 여류 예술가이다. 둘 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고, 샤넬은 디자이너로서, 로랑생은 화가로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보면 샤넬이 자신의 재능을 찾아 패션계의 탑으로 올라선 반면, 로랑생은 당시 기욤 아폴리네르의 뮤즈로서 더 알려졌다.

 

어쨌든 동갑내기 친구인 샤넬이 어느 날 로랑생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한다. 그러나 완성된 자신의 초상화를 본 샤넬은 자신의 모습과 다르다고 초상화를 로랑생에게 돌려보냈고 현재는 이 작품이 마리 로랑생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 그림 속의 샤넬은 얼굴에 고독과 슬픔이 묻어 있는데 그것은 그녀의 생의 고단함이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샤넬은 좀더 생기 넘치는 자신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로랑생은 샤넬의 내면의 고독까지 그림에 표현한 것이었다.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의 로맨스

 

 

당시 기욤 아폴리네르는 인기 있는 시인이었고, 마리 로랑생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였다. 로랑생의 재능을 알아본 피카소는 그녀를 ‘세탁선’으로 초대하였고 그곳에서 그녀는 아폴리네르를 만나 “이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는”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자라온 환경이 비슷하고 서로의 작품세계에 따뜻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나갔다. 로랑생이 자신의 초상을 그린 것만 봐도 아폴리네르를 만나기 전과 후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로랑생이 미라보 다리의 저편 오퇴유 지역으로 이사를 오자 아폴리네르도 로랑생을 따라 미라보 다리의 이편으로 이사를 온다. 그들은 매일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변함없이 흐르는 센 강물처럼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센 강물에 비친 아름다운 에펠탑을 보며 사랑이 더 깊어져 갔을 것이다.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나눈 6년의 사랑이 모나리자 그림 도난 사건을 계기로 끝이 났다. 당시 모나리자 그림의 도둑으로 몰린 아폴리네르는 감금되어 있어서 로랑생을 얼마 동안 만나지 못했다. 모나리자 그림 도난의 진범이 잡히고 로랑생을 찾아간 아폴리네르에게 로랑생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바로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던 독일인 남자하고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참,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나는 미라보 다리에 서서 그들의 이별 장면을 상상하니 아폴리네르의 황망한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 후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를 홀로 걸으면서 로랑생과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쓴 시가 프랑스 교과서에도 실린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 삶처럼 저리 느리게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나고 /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밤이 오고 /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남편과 이혼한 로랑생은 그 후 파리로 돌아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했으며,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깊은 사랑을 하지 않았으며, 유언으로 하얀 드레스를 입혀주고 장미꽃 한 송이와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가슴에 얹어달라고 했다는 것으로 보아 죽을 때까지 그녀는 아폴리네르를 잊지 못했다.

 

잊히지 않은 여자, 로랑생

 

아폴리네르의 시에 답을 하듯이 로랑생이 쓴 시가 있다.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어자 /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 잊혀진다는 건 가장 슬픈 일"

 

그녀의 그림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녀의 연인 아폴리네르가 헤어진 후에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명시를 남겼으니, 그녀는 분명 잊히지 않은 여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컬렉터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다. 그는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 작품을 컬렉션하다가 미술관까지 오픈했었다. 현재 마리 로랑생 미술관은 문을 닫았고 작품을 전시회에 대여하는 정도라고 하니 그녀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볼 기회가 언제 올지 안타깝다. 그녀의 전시 소식이 들리면 달려가서 보아야 할 것 같다.

 

[ 글=권은경. SG디자인그룹대표.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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