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한 문학평론가가 '흥부전'에 대한 놀랄 만한 해석을 내어놓는다. '흥부전'에 등장하는 ‘놀부’와 ‘흥부’에 관한 해석을 새롭게 내놓는다. 한 마디로, 나쁜 놈 놀부에게도 본받을 점이 있고, 착한 흥부라고 해도 배워서는 안 될 나쁜 점이 있다는 해석이었다. 그해 나는 시골 출신의 순진한 대학 2학년 학생이었는데, 이 새로운 해석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의 인식 체계 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생각해 보면 이런 창의적 해석에 대해 나의 지적 너그러움은 참으로 인색했다. 내가 받은 학교 교육을 생각하면 나의 인색함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 새로운 해석은 당시 30대 초반의 문학평론가 이어령이 들고나온 것이었는데,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놀부의 악덕과 흥부의 선량함을 대비시켜 이른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적 주제를 강조하는 기존의 전통적 해석에 발칙할 정도로 대드는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55년이 지난 오늘에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해석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하던 해석이었다. 이 해석은 당연히 ‘창의적 해석’의 끝판쯤 되는 듯했다. 이때의 ‘놀부 해석’이 있음으로써, 놀부를 근대 자본주의적 현실을 인식한 인물로 보고, 또 그런 현실 대응력을 보여 준 인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통념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새로운 해석의 골자는 이러하다. 놀부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강하고, 그런 만큼 주체(主體)로서 책임감도 엿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을 바꾸어 보려는 도전 의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재물을 추구하는 방식, 봉건 윤리를 넘어서려는 의식 등에서 일종의 근대적 각성을 보여주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흥부는 자신의 현실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고, 그런 만큼 비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주체로서의 자각이 없고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봉건 시대의 관습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놀부는 새롭게 재탄생한 셈이다. 이어령 선생의 ‘흥부전 창의적으로 읽기’가 끼친 성과이다. 어찌 이어령 선생에게만 가능한 일이겠는가. 창의적 발상과 미래의 세계관으로 이야기(narrative)를 대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도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이나 인생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힘은 원래 이야기가 지닌 본연의 힘이다. 이어령 선생의 창의적 해석도 '흥부전'이라는 이야기(narrative)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놀부의 재탄생은 '흥부전' 자체에도 크게 유익하다. 고전으로서의 가치와 영광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흥부전'이야기는 이어령의 창의적 읽기에 의해서 작품의 가치와 의미가 더 풍성하게 되었다.

이렇듯 ‘이야기’와 ‘인간’은 서로 왕성하게 주고받는다. 이렇게 이야기와 인간의 상호성이 활발할수록 인문학은 발전하고 그만큼 인간 정신에 유익함을 준다. 인간은 이야기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인간을 더 깊게 이해하는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야기 읽기는 그런 정신 활동을 하는 과정이다. 인문학이 지니는 궁극의 역할과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을 재발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일상에서 그저 겉모습으로만 알고 있던 인간을, 어떤 통찰로 그 진면을 재발견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야기는 그런 통찰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인간 재발견은 ‘현실 발견’, ‘시대 발견’, 그리고 ‘세계 발견’으로 이어지는 인간 성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내면과 인간이 살아가는 생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 쪽에서 보면 ‘인간적 성숙’을 향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무더위 속 휴가를 떠나면서, 가방에 이야기책 한 권을 넣어가는 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