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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황병기의 ‘침향무’

후손 위한 큰마음을, KBS는 미용·강장제로 설명합디다

 

얼마 전 KBS 라디오 고전음악 채널 ‘클래식 FM’에서 진행자의 황당한 얘기에 놀랐다.

 

서양음악만 틀다가 유일하게 우리 음악을 들려주는 ‘FM 풍류마을’ 시간, 큰 작곡가로 가야금 명인인 전(前) 이대 교수 고(故) 황병기 선생의 ‘침향무’를 들려주면서 곁들인 설명이었다.

 

“침향은 ‘외국’에서 들여오는 향의 이름입니다”라고 했다.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라는 얘기다. 운전 중에 얼핏 들었던 터라 ‘인도(인디아)’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야금 곡인 황병기 작곡 ‘침향무’의 침향이 인도나 아니면 다른 외국 어떤 나라에서 (현재) 수입되는 향(香)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설명이었다.

 

‘몸에 좋다’는 물질(제품)은 유행을 탄다. 미용도 정력 강장도 그렇지만 요즘은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이런 유행 이끈다. 경험 상, 오래 가지는 않는 ‘돈벌이’ 관련 유행이다. 패션(fashion) 축에도 못 끼는, 영어로 패드(fad)라고 하는, 스쳐 지나는 짧은 유행일 터다.

 

‘메뚜기 한 철’ 같은 그런 제품의 속성 때문에 두루뭉술 장점(長點)만을 강조(과장)하는 것이 이런 제품 광고의 특징이다. ‘침향*’과 같이 침향이란 것이 ‘몸에 좋다’는 온갖 유혹적인 언사(言辭)와 함께 들려오는 것이다.

 

그 광고를 보고 방송의 제작진은 ‘황병기의 침향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진행자의 설명으로 미루어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선생이 이런 유행을 예감(豫感)하고 오래 전(1968년)에 그 곡(曲)을 작곡했을까?

 

생전의 그가 ‘침향무’를 연주한 자리에서 기자(필자)는 그 뜻을 물었다. 향을 꺼내 쓸 이가 손주 세대일 수도 있겠지만, 훨씬 나중 어쩌면 수천 년 지나 살 후손(後孫)들의 정결(淨潔)한 삶을 손 모아 비는 선조(先祖)들의 웅혼한 뜻을 고마워하는 음악이라고 했다.

 

매향(埋香)이란 옛 풍속, 참 아름답다. 오래 전 세상 살다 가신 할아버지들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좋은 향나무를 묻은(埋) 것이다. 불교와 어울린 우리 민중의 신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전남 신안, 경남 사천 등지 남서해안에 여럿 있는 매향비(埋香碑)다.

 

그렇게 꺼낸 향은 좋은 기운을 품어낸다고 한다. 물론 부처님께도 공양하는 지극한 민초들의 마음이리라. 그게 우리 역사 전통의, 침향(沈香)이다. 沈은 물(水,氵 수)에 담갔다는 뜻이다.

 

침향무(沈香舞)는 그 침향의 뜻이나, 침향 바치는 자리를 위한 춤이겠다. 소박하고 경건하다. 선생의 ‘침향무’는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의 음계(音階)를 바탕삼은 곡이라고 했다.

 

선생이 사랑해 자주 연주했고, 청년들에게 늘 들려주고 싶었던 음악이었다. 몸소 하신 말씀이다.

이 ‘침향’의 뜻을 잊었거나 몰랐던 것이리라. 그 귀한 방송시간에, 황병기 ‘침향무’를 요즘 광고로 소개되는 미용·강장제 ‘침향’과 관련지어 소개했던 까닭이겠다. 글자가 같아서 생긴 현상일까. 이런 변명으로 설명이나 양해가 될까.

 

특히 방송 신문 등 언론 공기(公器)의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공인(公人)들의 무지나 무관심이 대중에게 미치는 (악)영향이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할 지를 저어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신다면, 필자처럼, 황당할 것이다. 서운해 하는 모습, 마치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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