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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세상사는 맛과 멋

 

이 더위에 난 꽃이 피었다. 이른 봄에 분갈이를 해서 그럴 것이다. 먼저 올라온 꽃대는 시들해졌다. 난을 선풍기 옆으로 앉히고 차분히 들여다본다. 꽃은 꽃인데 난 꽃이라서인지 코와 눈과 가슴이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신석정 선생의 수상집 ‘蘭草 잎에 어둠이 내리면’을 펼쳐본다. 선생님은 한복을 곱게 입고 뿔테안경을 쓴 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시는데 책상머리에는 큼직한 난 화분이 놓여 있다. 그 사진 우측 아래는 작은 글자로 ‘그윽한 서실에서의 저자’라고 새겨져 있다. 책장을 넘기니 ‘서시’로써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라는 시가 있다.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 그때 나는/ 노을이 흔들리는/ 언덕에 앉아 있었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글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괴테는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영역일지라도 인류를 번영시킨 것은 책이 아니겠냐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멈추지 않는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쌓아온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주인공들도 독서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라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가끔 뒤돌아 볼 때가 있다. 첫째는 생계유지 형으로서 자립을 위한 사회적 위치와 금전 욕구의 충족적 시기가 있다. 다음은 외부지향형으로서 성공지향과 존경과 지위를 목적으로 하는 출세의 시기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내부지향형으로서 자신의 성숙과 자아실현이요, 삶의 최후의 목적을 위한 영혼의 충전과 관리 문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생계지향형 이전부터 너무나 지치고 힘겨웠다. 태어날 때부터 외로웠고 슬펐다. 청소년시절에도 한 눈 팔 겨를이 없었다. 내게 낭만은 없었다. 어머니를 껴안고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다. 세상에 소통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비하하고 자책하며 지냈다. 정서적 지도도 잘못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 때부터인가 ‘모든 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만 돌리지 말라’는 스스로의 언어를 들었다. 사실이 그렇다. 지금까지 세상사는 맛이 출세지향적인 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철학과 인문학적 공부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 아침 난초의 꽃과 그 향기를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잘 먹고(비싼 고기), 잘 사는 게(비싼 집, 고급승용차) 그저 이런 거라면 동물세계의 그저 그런 것이겠지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찾아가는 길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 속에서 나를 위로하며 살기로 했다. 지칠 때, 서러울 때는 마음 가다듬고 책을 읽으며 좋은 말씀은 새기며 내 영혼을 충전해 왔다. 속세를 떠나 울고 싶을 때는 높은 산에 올라 하늘 가까이 가서 기도했고, 통곡의 벽 앞에 서보기도 했다.

 

한여름 깊은 산 숲의 속살에 안기면 뜻하지 않는 생각과 느낌이 주어진다. 세상사는 맛을 제 맘대로 해치우는 데 두는 권력형 인간과 자본가에게 둘 것인가. 아니면 영혼의 스승 같은 분들이 난초 앞에서 시를 쓰며 인격의 향(香)을 고민하는 멋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때 하늘을 보았다. 순간 세월의 하늘 위로 한 줄기 멋진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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