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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신이 있다면 왜 세상은 이 지경인가, 그 미스터리한 논쟁에 대하여

158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맷 브라운

 

극장가 한편에서 조용히 개봉 중인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연극 ‘라스트 세션’(국내에서도 2023년 대학로에서 번안 공연됐다. 신구 이상윤 출연)을 기반으로 한 작품인 만큼 매우 연극적인 작품이다.

 

두 배우의 다이얼로그가 영화 전반을 차지하고 내용도 꽤나 깊고 철학적이라는 얘기이다. 다만 이전의 연극이 어쩔 수 없이 ‘평면적’일 수밖에 없었다면 영화는 영화인 만큼 시공간을 오가는 입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예컨대 영화에서는 프로이트 박사의 꿈과 환상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가 지니는 표현주의 미학의 정점 같은 것을 담보해 내는 것이다.

 

 

그런 장면은 마치 오래전 알프레드 히치코크가 만든 ‘스펠바운드’(1945)를 연상케 한다. 한국에서는 『 KBS명화극장 』 방영 당시 ‘백색의 공포’라는 제목의 영화였으며 그레고리 펙과 잉그리드 버그먼이 나왔던 작품이다.

 

정신분석이지만 스스로 정신병, 강박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은 종종 꿈을 꾸는데 그 내용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과 같은 이미지 영상으로 이어진다. 이번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에서도 프로이트 박사(안토니 홉킨스)는 꿈을 꾸는데,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휠체어에 태워진 채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는 장면이다.

 

침대에는 자신의 딸 안나(리브 리사 프리에스)와 그녀의 동성 연인 도로시(조디 발포어)가 벌거벗은 채 서로 껴안고 누어 있다. 옆방에는 어릴 때 아버지가 그때 모습 그대로 나와 자신을 노려 보고 있으며 벽에는 온통 성 딤프나(정신병 환자들을 지켜주는 수호성인) 등 가톨릭 성인들의 조각상들이 가득하다.

 

프로이트 박사의 턱수염은 그가 흘린 피로 가득해진다.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이처럼 연극 ‘라스트 세션’이 보여 줄 수 없었던 장면들을 ‘영화적으로’ 재창출해 낸다. 그 연출의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정신분석 의학의 최고 경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마지막 미팅 혹은 마지막 회의의 몇 시간을 보여 준다. (그는 며칠 후 구강암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안락사 하는 것으로 나온다.)

 

회의의 상대는 옥스퍼드 대학교수이자 훗날 『나니아 연대기』란 소설을 써 판타지 문학의 최고봉 작가가 된 C.S.루이스이다. 영화 속에서는 잭 루이스(매튜 구드)로 불린다.

 

때는 1939년 9월 1일이 막 지난 때이고 장소는 영국 런던이다. 1일은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날이다. 런던 시내에는 연일 공습경보가 울리고 일단 아이들을 대상으로 소개령이 내려져 기차역에는 자신의 아이를 시골로 내려보내는 엄마들로 넘쳐 난다. 라디오에서는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나와 독일이 폴란드 국경에서 9일까지 물러나 줄 것을 요청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체임벌린 내각은 전쟁 전 히틀러와 밀약을 추진할 만큼 순진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전쟁 전야의 와중이다. 곧 나치의 런던 대공습이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프로이트 박사는 잭 루이스를 초대한다. 그가 얼만 전 발표한 신학 에세이 『순례자의 귀향』때문이다. 둘은 세계관이 다르다. 한때는 둘 다 무신론자로서 같은 대열에 있었으나 루이스는 현재 성공회로 개종한 상태이다.

 

지금의 세상을 과연 신이 창조했는지, 그런데 왜 이 모양(1차 대전에 이은 또 다른 대전 직전)인지, 신은 무능한 것인지 이기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 탓인지,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두 박사는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프로이트 박사는 스스로를 ‘믿음과 숭배에 집착하는 열정적인 불신자’라고 명명한다. 그의 정신분석은 세상의 폭력과 인간 내면의 폭력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기초에서 시작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젠주흐트(Senhsucht, 갈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그는 ‘우리가 보거나 인식하는 것은 다만 꿈속의 꿈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의 꿈에 대한 분석을 어떻게 사회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느냐야 말로 프로이트 이론 분석의 시작이다.

 

반면 옥스퍼드 교수인 잭 루이스는 인간의 행동은 때론 신의 영역이어서 모든 걸 다 분석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인간의 모든 잘못은 신이 부여한 자유의지를 올바로 행사하지 못한 탓이지 결코 신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본질적으로 성적(性的)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프로이트는 그런 그에게 정신분석학에서 성이란 쾌락의 상호성을 말하는 것이지 꼭 육체적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두 사람이 종종 꾸는 꿈은 공히 숲속에 홀로 버려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에서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지만(아버지의 부재를 갈망했기 때문에) 루이스는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와중에 꼭 사슴이 자신 주변에 있음을 느낀다. 프로이트는 큰 딸 조피와 그녀의 아들을 병으로 잃고 난 후 막내 딸 안나에 대한 자신의 집착에 시달린다.

 

안나가 갖고 있는 아버지인 자신에 대한 근친 갈망(일종의 애착 장애이자 엘렉트라 콤플렉스)을 어찌하지 못하는 비밀을 갖고 살아가는 중이다. 루이스는 루이스대로 전장에서 같이 싸우다 죽은 친구의 엄마 제니(올라 브래디)와 동거 중이다.

 

그 역시 비밀스러운 관계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두 사람 모두 정신 분석학적으로 ‘사람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극중 프로이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모모스 얘기를 한다. 모모스는 인간을 싫어하는 신으로 조롱과 풍자가 전문이며 인간과 살아가려는 다른 신들에 의해 신전에서 내쫓긴 상태이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혐오하며, 따라서 신 중에 닮은 신은 ‘쫓겨난’ 신 모모스 를 닮았다는 의미이다.

 

 

전쟁의 와중에 두 석학의 이 같은 비공식적인 고담준론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꽤나 깊은 울림을 준다. 세상의 폭력은 내면의 폭력을 치유하는 과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 인간 스스로 자신의 불완전한 내면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잘못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무신론자인 프로이트와 종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루이스가 합의해 가는 내용이다. 프로이트는 루이스와 헤어지면서 친구라는 표현을 쓴다. 프로이트는 루이스의 저서 『순례자의 귀향』을 루이스에게 선물로 주는데 거기 첫 장 서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오류에서 오류로. 그러면 진실에 가까워질 것이다.’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실제로 만났는지는 역사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순전히 상상력의 산물로 두 인물의 사상을 접목시켰을 때 어떤 논쟁이 벌어질까를 생각하고 개발한 대본이자 시나리오이다. 영화와 연극이 해낼 수 있는 상상력의 극치이다. 이런 걸 두고 흔히들 ‘예술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안토니 홉킨스의 명불허전 연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루이스 역의 매튜 구드 연기도 그 못지가 않다. 저렇게 수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울까 싶을 정도로 달변의 연기들을 선보인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에서의 ‘세션’ 열기는 실로 불꽃이 튀긴다. 두 사람의 연기와 그것을 잡아낸 연출(감독 맷 브라운) 덕이다. 대화 장면은 커트 수를 잘게 나누지 않고 대체로 길게(롱 테이크로) 찍었다.

 

 

영화의 시작과 후반에는 『천로역정』의 문구가 쓰인다. 1678년 존 번연이 쓴 성서소설이다. 영화 오프닝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세상의 황야를 거닐다가 / 한 동굴이 있는 장소를 발견하곤 / 몸을 뉘어 잠을 청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후반에는 루이스가 집 앞에서 만난 프로이트의 딸 안나와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이 분노와 눈물의 땅 너머로 / 공포의 그림자만 어른거리지만 / 세월의 협박은 지금도 앞으로도 / 날 두렵게 하지 못하리.”

 

한 사람에게 동굴은 정신분석학이었고 또 한 사람은 성서였지만 세상의 공포가 자신을 두렵게 하지 못한다는 것에 합의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논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상 최고로 미스터리한 논쟁일 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논쟁을 통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이 가르쳐 주는 궁극의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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