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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칼럼] 대스타 알랭 들롱의 마지막 길

 

예술의 영원한 아이콘 알랭 들롱(Alain Delon). 그가 지난 18일 새벽 3시 프랑스 자택에서 숨졌다. 19일 아침 세계 언론은 이 배우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위대한 배우이자 위대한 반동’이라는 타이틀로 그에게 감사했다. 영국 가디언은 “잘생기고 최면에 걸린 듯한 알랭 들롱은 영화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스타 중 한 명이었다”라고 보도했고, BBC는 “살인자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사기꾼까지 어떤 역할이든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배우였다”라고 표현했다.

 

독일도 질세라, 뮌헨 메르쿠르지는 ‘고마워요, 지니(천재)!’라는 헤드라인을 뽑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치명적인 남자’라는 제목으로 들롱에게 감사했다. 특히 이 프랑스 배우가 큰 인기를 누렸던 일본에서는 NHK가 앞장서 “들롱은 영화 속 매력과 몸짓으로 우상화되었다”고 회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강렬하게 잘생긴’, 당대 최고의 영화 제작자들이 구애한 ‘국제적인 스타’라고 죽은 이를 애도했고, 뉴요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잘생긴 남자”라고 요약했다.

 

스위스의 르땅(타임)지는 들롱을 ‘프랑스 영화의 마지막 위대한 신화’, 그리고 ‘천사의 얼굴을 가진 진정한 터프가이’로 묘사했다. 스페인의 엘파이스는 “비교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 “유명한 유럽 영화의 아이콘”으로 칭송했다.

 

들롱은 프랑스 영화가 아직 할리우드에 밀리기 전인 1960년대와 70년대 세계를 강타한 배우다. 그의 작품 ‘태양은 가득히’, ‘태양은 외로워’,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사무라이’, ‘볼사리노’, ‘조로’ 등을 안 본 기성세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 언론들의 그에 대한 찬사는 절대 과도하지 않다. 프랑스 정부도 그에게 큰 감사를 드리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깊이 애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스타는 국장을 원치 않았다.

 

몇 년 전 들롱은 프랑스 2TV의 인기프로 ‘차 혹은 커피’에 출연해 자신이 죽으면 국가적 추모행사를 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했다. 진행자 카트린 세일락(Catherine Ceylac)은 장례식을 국민가수 조니 알리데나 샤를 아즈나보, 대배우 장 폴 벨몽도처럼 국장으로 치르길 원 하느냐고 묻자 “아니요. 아니요. 무엇보다도, 그건 아닙니다!”라고 크게 손 사레를 쳤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묻히고 싶어요. 그러나 당신이 언급한 사람들처럼은 아니지요.”

 

들롱은 화려한 장례식보다 작은 장례식을 원했다. 소원대로 그의 장례식은 지난 24일 오후 4시 그의 시골집 두시(Douchy)에서 간소하고 조용히 치러졌다. 파리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루아레 지역의 작은 마을 두쉬. 약 13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들롱은 1971년 이곳에 정착해 집을 짓고 반려견들을 키우며 살았다. 그가 천국이라고 묘사한 이곳에 그는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그곳에 5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해 그를 보내줬다.

 

소시민으로 살기를 원했던 알랭 들롱. 그는 두시의 유일한 레스토랑인 ‘오베르 뒤 떼루아’에서 종종 점심을 먹고 약국이나 상점에서 쇼핑하는 것을 즐겼다.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클로스로 분장해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다. 두시 주민 중 그를 만나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 들롱은 대스타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살다가 죽기를 원했던 것 같다. 평소 인간적인 삶과 간소한 장례식을 예찬한 내게 들롱의 마지막 선택은 가뭄에 단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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