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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졸업앨범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졸업앨범은 1학기 중반인 5~6월에 촬영한다. 봄 배경을 바탕으로 야외 사진을 찍으면 자연광의 화사함과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나오고, 너무 덥지 않아서 좋다. 대부분의 학교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 시즌에 졸업앨범 촬영을 마친다. 사진을 찍는 몇 시간 동안은 수업을 할 수 없으니 대다수 아이 모두가 행복해하는 날이기도 하다.

 

촬영 당일에는 아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특이한 소품을 준비해온다. 최근에는 장래 희망과 관련된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다. 축구 유니폼과 축구공, 판사복과 법봉, 컴퓨터 키보드와 방송 마이크처럼 직업이 연상되는 물품을 많이 들고 왔다. 수의사가 꿈인 친구는 의사 가운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데려와서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경력 많은 사진 작가님을 만나면 평소 경직된 표정이 대부분이던 아이들의 다채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 작가님이 처음에는 친구야 웃어~ 웃자!를 외치다가 아이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데 그치면, 그때부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아이를 웃기려고 노력하신다. 그러다 아이가 폭소하면 그때 연신 셔터를 누른다. 결과물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 한 명이 서 있다.

 

나이스 정보란에는 아이들 사진이 들어간다. 보통 1학년 입학 때 사진을 넣고, 6학년 졸업하기 전에 가장 최근의 사진으로 바꾼다. 졸업앨범 촬영 날 증명사진을 함께 찍어서 그 사진으로 변경하는 게 일반적이다. 나이스에는 갓 1학년이었던 솜털 보송보송한 애기들이 있는데, 6년이 지나 훌쩍 큰 사진을 보면 부모가 아닌데도 뭉클한 마음이 올라온다.

 

졸업앨범이 처음 나왔던 시절에는 사진이 귀했고,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기념할만한 책자가 필요했다. 사진이 흔해진 지금까지도 앨범은 당연히 사야 하는 것으로 남아있다. 내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학생들의 졸업앨범 구매율은 100%였다. 심지어는 3권 이상 구매하는 아이도 있었다. 궁금해서 구입 이유를 물어보니 양가 할머니 댁에 선물처럼 드린다고 했다.

 

6학년 중간에 전학 가더라도 자신이 오래 다닌 학교에서 앨범을 구입하고 싶어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학창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 추억 등을 가져가고 싶은 것이다. 단순히 그 시절 내 사진이 필요한 거라면 혼자 사진관에 가서 촬영해도 충분하다. 앨범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학교를 다녔던 모든 이들에게 추억 매개체가 되어주었던 졸업앨범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몇 년 전부터 졸업앨범이 사진 합성에 소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교직원 사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학생들, 교장, 교감 선생님, 6학년 담임교사들 정도만 앨범에 들어간다. 점점 6학년 담임들도 앨범에 얼굴을 빼고 싶어 하는 기류가 흐른다. 학교 추억에 교사들도 들어가지만, 사진을 남기기엔 부담스럽다는 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몇 달 전 서울대 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두 사건 모두 졸업앨범이 딥페이크 사진 소스를 제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불안감으로 존재하던 사진 악용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누군가가 앨범에 자신의 사진을 넣지 않겠다고 했을 때 걱정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졸업앨범 보이콧 소식이 들리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아직 보이콧 움직임이 크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딥페이크 관련된 강력한 규제와 법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졸업앨범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고 하기엔 죄의식 없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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