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폭이 9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줄곧 감소해 왔던 신용대출과 2금융권 대출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에 제한을 두면서 수요가 움직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금융권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풍선효과'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만큼, 가계부채 안정을 위한 추가 제한조치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벼랑 끝까지 내몰린 서민층의 대출 문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발표한 '2024년 8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9조 3000억 원 증가했다. 이는 전월 증가폭(5조 4000억 원)의 약 1.7배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빚투(빚내서 투자) 광풍이 일었던 2021년 7월 이후 3년 1개월만에 최대치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꾸준히 감소해 왔던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이후 3개월 연속 감소해 왔던 기타대출은 지난달 들어 1조 1000억 원 늘었다. 증가 폭은 지난 2021년 7월 이후 3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잠재우고자 은행들이 주담대 문턱을 높이면서 대출 수요가 신용대출 등 다른 상품으로 이동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의 주담대 제한조치 이후 금융권이 우려해 왔던 '풍선효과'가 실제로 나타난 셈이다.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던 2금융권의 가계대출도 지난달 들어 반등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5000억 원 늘었다. 상호금융권(농협·신협·수협)을 제외한 모든 업권의 가계대출이 증가했다.
풍선효과가 현실화된 만큼,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기 위한 은행권의 추가 제한조치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은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지난 10일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이뤄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은 "투기수요로 보이는 대출에 대해서는 여신심사를 강화할 계획"이라며 "갭투자에 활용될 수 있는 전세자금대출, 유주택자가 당장의 실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을 추가 구입하기 위한 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에 대해서도 심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출을 받기가 더욱 힘들어진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들의 '대출 절벽'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소비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 7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인터넷전문은행 3사(카카오·케이·토스)이 신규 취급한 일반신용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12.6점으로 지난해 말(898.6점)보다 14점 높아졌다.
2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감지되고 있다. 1금융권에서 밀려난 소비자들이 2금융권으로 향하면서 저신용자들의 대출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7월 신용점수 500점 이하인 차주에게 신용대출을 내준 저축은행은 웰컴저축은행, 세람저축은행, 스타저축은행 등 3곳뿐이다. 1년 전(8곳)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저신용 차주들이 급전 마련을 위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의 소액신용대출 잔액 또한 2분기 들어 5%가량 감소했다.
사실상 서민들의 마지막 동아줄처럼 여겨지는 카드론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7월 카드론 잔액은 41조 2266억 원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신용점수 500점 이하 차주에게 카드론을 내준 곳은 KB국민카드뿐이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론 잔액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현재 취급하고 있는 카드론의 부실화가 심상치 않다"며 "건전성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라 저신용자 대상 대출 취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2금융권의 대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압박 수요를 높이면서 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은 3년 전 영끌·빚투 수요가 카드론으로까지 번졌던 만큼, 상황을 주시하며 카드론 한도 축소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론은 개인 급전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향후 금융당국이 한도를 줄일 경우, 취약차주들은 제도권 밖 대출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