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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2주기] “놀러 가서 죽었다니...평범한 일상 즐기다 참사당한 아이들”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김의현 씨 어머니 김호경 씨 인터뷰
경찰, 보여주기식 행정...“CPR만 멈추지 않았어도 희생자 줄었을 것”
“평범한 일상 즐기던 아이들에게 마약이라니...”
“진상규명?...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 그날의 기록”

 

 

지난 2022년 서울 한복판서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가 2주기를 맞이했다. 참사와 관련해 부실 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핵심 책임자에 대한 첫 선고가 약 2년 만에 이뤄졌지만, 이임재 전 서울용산경찰서장이 1심서 금고형을 선고받은 것이 유일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 형을 선고 했다. 그러나,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 핵심 책임자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참사 유가족들은 “경찰에 잘못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은 왜 죽었나”며 “국민들이 누구를 믿고 거리를 배회할 수 있는 것이냐”며 책임자 처벌 미흡 문제를 지적했다.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김호경 씨는 참사 당일 아들 故김의현 씨를 떠나보냈다. 경기신문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지난 24일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연화장에서 김 씨를 만났다.

 

김 씨는 의현 씨의 장지를 본래 고향인 강원도 원주로 두려고 했지만, 의현 씨가 학창 시절 수원에서 자라온 시간이 길고, 그를 떠올리는 친구들이 자주 찾아올 것을 두고 수원연화장을 택했다.

 

 

◇ 새벽 5시 55분, 아들의 출근길

 

김 씨의 알람시계는 현재까지도 오전 5시 55분에 맞춰져 있다. 의현 씨는 생전 코로나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해 아침 일찍 출근해 왔다. 김 씨에게 참사 당일 떠오르는 기억에 대해 물었다.

 

“의현이는 평상시와 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나 선별진료소로 출근했어요. ‘엄마, 나 다녀올게’하고 나갔고, 그날 외할머니랑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더니 퇴근 후 여자친구랑 한남동에 있고 피자가게에 간다고 했죠. 아마 걸어서 이태원에 구경을 간 것 같았어요.”

 

의현 씨는 다녀온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의현 씨와 같이 있던 여자친구는 다행히 생존해 그날의 생생한 증언을 김 씨에게 전했다.

 

“의현이 여자친구 말로는 세계 음식 골목으로 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인파가 몰렸다고 했어요. 여자친구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 인파에 휩쓸려서 사고 골목으로 들어가게 됐고, 의현이는 여자친구와 그 골목 끝자락에 있었는데, 그때 옆에서 어떤 남자분이 ‘여자친구가 숨을 안 쉬고 있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해서 의현이가 병원에서 일하니까, 본인이 도와줘야 된다고 자기를 그쪽으로 밀라고 여자친구에게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여자친구는 마비된 상태로 의현 씨에게 안겨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벗어난 후 여자친구는 구조대원이 의현 씨를 떼어내자, 그가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구조대원이 심폐소생술(CPR)을 하다가, 다른 현장으로 이동하는 모습까지 마비된 상태로 지켜봤다.

 

“그날 조금만이라도 구조 인력이 있어서 더 신속하게 조치를 했더라면 살 수 있는 아이들이 더 많았을 겁니다. 의현이 같은 경우도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고 다른 아이들도 맥박이 뛰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길거리에서 세상을 떠나게 한 것 같아요”

 

참사 당시에는 코로나19 종식 선언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각종 언론에서도 핼러원데이를 앞두고 이태원 인근에 10만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김 씨는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이태원 거리가 한산했을 때도 도로 통제를 위한 경찰들이 배치됐었다고 일갈했다.

 

 

◇ “평범한 일상 즐기던 아이들에게 마약이라니”

 

윤석열 정부가 당시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태원 참사 당일에도 마약 단속을 하기 위한 경찰과 20명 규모의 교통기동대만 배치됐다. 참사 당시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 안전사고 발생 심각성에 대해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서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지난 5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공판에서 “음주단속도 아니고 마약단속을 현장에서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이 전 서장은 “사전 언론홍보를 통해 경찰이 집중단속을 한다는 것을 알리면서 예방하려는 차원에서 경찰을 배치했다”고 답했다. 이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보여주기식 행정에만 몰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씨는 유가족협의회가 바라는 진상규명에 대한 뜻을 밝혔다. 이어 이태원 참사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159건의 사건인데, 경찰 신고가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무대응으로 답한데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오후 6시 34분에 첫 신고가 들어왔는데, 첫 신고를 한 시민이 경찰이 해야 될 일까지 다 알려주시더라고요. 신고를 받고 출동만 제대로 했었다면 그날은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고 내용에는 ‘이태원 1번 골목인데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압사 당하게 생겼어요. 여기 경찰분들이 오셔서 일방통행으로 통제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담겨져 있었어요.”

 

유가족협의회는 159명의 희생자에 대한 각각의 골든타임을 놓친 이유를 설명받기 위해 참사 당시 구급일지를 정부에 요구해 받았다. 구급일지에는 상세한 상황 설명은 없었고 시신을 이송한 기록뿐이었다.

 

“해당 문서에는 이태원에서 아들이 쓰러져서 도로 근처에 폐건물로 이송됐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고, 동행자였던 여자친구에게 나가라고 하면서 실종 신고를 하라고 한 뒤 어디로 이송했는지를 알 수 없었어요. 나중에 구급 일지를 보니 다목적 체육관에 있었더라고요. 아이를 이름도 없이 ‘미상 다 - 28번’ 이런 꼬리표를 달고 그것도 집에서 60km 떨어진 일산 동국대 병원으로 이송을 했더라고요. 이태원 도로에서부터 다목적 체육관까지 어떻게 이송했는지 나와 있는 게 없고 119 구급대원이 다목적 체육관에서 일산 동국대병원으로 이송한 내용만 있었어요.”

 

 

◇ 진상규명, 그날의 기록, 책임자 처벌

 

유가족협의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 씨는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저희 유가족들이 서울역 빌딩 지하에서 비밀리에 모였는데 그때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만나서 손잡고 도와주겠다며 같이 눈물도 흘렸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희생자 가족 몇 명이 유가족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영상을 보고 우리가 협의회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처음 협의회 활동을 할 당시에는 앞장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후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유가족들이 하나 되는 모습에 점점 앞으로 나오게 됐다.

 

“어느 순간 한 발짝 한 발짝씩 앞으로 나오게 됐죠. 우리 아들이 허무하게 갔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사과하는 사람 없고 누구 하나 물러서는 일 없고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의현이는 군대도 다녀왔고 직장도 다니고 자기 미래에 대해서 한창 얘기하던 청년이었는데, 그런 아들이 사라졌다는 게 믿기지 않고 너무 억울해요.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내 자식이 아침에 분명히 ‘엄마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나갔어요. 근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참사 발생 2주 전 의현 씨와 딸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지만, 집안에는 사진을 걸지 못하고 납골당에만 걸어 놨다. 그는 참사 관련 진상규명이 끝날 때까지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이태원 참사는 처음부터 정부의 프레임으로 인해서 모든 국민들이 ‘놀러 갔다 죽었다’, ‘귀신 서양 귀신 놀음에 왜 거길 갔느냐’와 같은 프레임에 씌어져 있는데, 아이들은 마약을 하다 죽은 게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던 아이들이었는지를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국민들이 깨어 있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지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서 씌워진 프레임은 언젠가 벗겨질 것이고 국민들이 깨어 있으면 언제든 진실은 밝혀질 겁니다.”

 

[ 경기신문 = 옥지훈 기자 / 영상취재 = 임혜림 기자·김민솔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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