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문 발표에 이어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국민의 최대 관심은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와 거짓없는 해명, 이를 바탕으로 향후 어떻게 국정쇄신을 추진할 것인지에 있었다. 대다수 국민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이지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역시나’였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자화자찬, 변명으로 일관한 총리대독의 국회 시정연설과 판박이였다. 한 가지 추가된 것이 있다면 주제가 불분명한 ‘맹탕사과’였다. 윤 대통령은 “돌아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국민께서 맡기신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다”며 자신의 노력과 진심을 먼저 강조했다. 이어 “민생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일들이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리기도 했고, 제 주변의 일로 국민께 염려를 드리기도 했다”며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진행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으로, 무엇을, 왜’ 사과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의 결심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임기 반환점을 지난 시점에서 국민에게 감사와 존경의 입장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결국 대통령의 사과는 언론과 국민의 비판이 워낙 거세니까 마지 못해 하는 ‘의례적인 사과’에 불과했고, 국민이 기대했던 진솔한 사과는 끝내 없었다.
윤 대통령은 명태균씨와의 통화 녹취 공개로 불거진 대통령실의 거짓해명 논란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명태균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달 8일 “(경선)이후 대통령은 명 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달 31일 민주당이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녹취를 공개하면서 대통령실의 거짓 해명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명씨로부터)축하 전화를 받고 어쨌든 명씨도 선거 초입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고 자기도 움직였기 때문에 하여튼 수고했다는 얘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고 제가 비서실에 얘기를 했다"고 설명하면서 "대통령실 대변인 입장에서는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얘기하기는 그러니까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는 그런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명확히 밝힌 팩트를 비서실 참모들이 거짓으로 국민께 설명했다니 놀랍고, 그것이 밝혀진 후에도 문책 당한 참모 하나 없는 대통령실의 무너진 기강은 더 놀랍다.
윤 대통령은 명태균과의 통화에서 드러난 공천개입 의혹을 묻는 질문에도 “(명씨)관련해서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또 감출 것도 없다"며 관련 의혹들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드러난 의혹은 매우 구체적인데 비해 의혹을 부인하는 대통령의 답변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이 공개한 녹취에서 윤 대통령은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줘라 했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며 자신이 김영선 공천을 지시했다고 명확히 말했고, 이에 명씨는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명씨의 전화는 의례적인 축하 전화로 기억할 뿐이며 공천개입은 없었다는 주장만 되풀이 했다. 대통령의 육성을 직접 들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윤 대통령은 김여사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다소 격정적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기자들의 질문에 ‘국정농단’이라는 표현은 없었지만 윤 대통령은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 선거를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에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 하게 하는 일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하며, "저희 집사람도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많이 악마화 시킨 건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까지 주장하는 ‘김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은 위헌”이라고 강하게 선을 그었고, 김여사의 대외 활동 및 외교 활동 중단 여론에 대해서도 "지금 여론을 충분히 감안해 외교 관례상, 국익 활동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저와 제 참모들이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왔다"며 기조의 변화는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어제의 대통령 담화와 기자회견은 결국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없었고, 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했다. 집권 후반기가 더 걱정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