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축성이 끝난 지 228년 만인 2024년 11월 23일, 그들의 이름이 불려졌다.(경기신문 25일자 7면, ‘수원화성 축성 장인 정신 기리며…위패 봉안 문화제 성료’) ‘이자근노미’ ‘노차돌’ ‘김개노미’ ‘전광세’ ‘쇠고치’…수원화성 축성 당시 목수, 석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화공, 톱장이로 일했던 민초 장인(匠人)들의 이름이다. 많은 수의 장인들은 이름이 없이 ‘큰놈(大老味)’ ‘50에 낳은 애(五十童)’, ‘기다란 녀석(麒麟金)’ 등으로 장인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름이 없었기에 화성 축성현장에서 등재된 이름이 많았을 것이라고 화성연구자들은 추정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는 화성 성역 모든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화성성역의궤’엔 이 역사적인 공역에 참여한 장인 1821명과 함께 화성성역소의 관리직 376명 등 2197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1796년 화성축성이 완료된 지 228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관광명소가 되어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지만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에 (사)화성연구회가 나섰다. 화성연구회는 1997년 12월 ‘누구보다 화성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립한 단체다. 역사학자, 언론인, 화가, 사업가, 사진작가, 교사, 교수, 건축전문가, 문인, 전통무예연구가, 연극인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화성 바로알기 강좌’, ‘국가유산 모니터링’, ‘유산 지킴이’ 등 화성 바로 알리기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화성의 사당인 성신사 터를 조사, 푯말을 세우고 고유제를 지내면서 수원시에 복원을 건의, 성신사 복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정기학술회의와 화성 관련 자료 발굴과 연구 등 그간의 발표를 통해 축적한 논문과 자료는 화성의 바람직한 보전과 화성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의 보존·관리, 학술·연구, 봉사·활용 등 각 분야의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아 2007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국 문화재 지킴이대회도 두 차례나 개최했다.
화성축성의 최고 공로자이지만 그 이름이 잊혀진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전 화성연구회 이사장인 김충영 서각가가 이들의 이름을 명패에 새기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원화성 축성 장인(匠人) 명패 봉안문화제’를 열게 된 것이다. 화성연구회가 나서자 대한불교 (재)선학원 팔달사와 수원시상인연합회가 뜻을 같이 했다.
그리하여 지난 23일 잊혀진 장인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넋을 기리는 이색적인 행사를 열었다. 팔달산에 있는 성신사에서 고유의식을 행한 뒤 화성행궁 화령전으로 내려와 정조대왕에게 고하고 명패를 앞세워 공방길을 거쳐 팔달사까지 취타대와 함께 거리행진을 했다. 팔달사에서는 봉안문화제가 열렸다. 장엄했다. 김우영 시인의 시 ‘그대들 비록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였으나’ 낭독에 이어 팔달사에서 마련한 바라춤 공연과 장인들의 안식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 의식이 이어졌다.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은 “화성이 있음으로 오늘날 수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도시가 됐고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됐다”면서 “수원화성 축성 장인(匠人) 명패 봉안문화제는 화성을 만든 장인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해주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각소 팔달사 주지스님의 이야기도 수원시가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스님은 “명패 관리에 성심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한 뒤, “수원시에서도 많은 관심을 두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원시가 이분들의 명패를 모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뜻이다.
화성축성 장인들의 명패를 모실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하다. 지금은 명패 수가 적기 때문에 임시로 팔달사 용화전에 모셨지만 앞으로 500개, 1000개, 2000개가 넘는다면 별도의 기념관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의 아름답고 절실한 소망이 결실을 맺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