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 지난 11일 전격적으로 대통령실 압수수색에 착수했지만 청사 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었다. 용산 대통령실 출범 후 강제수사 대상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과 대통령실은 팽팽한 긴장 속에 ‘대치’ 양상을 보이며 협조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결국 경찰은 원하는 수준의 증거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은 일단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한 뒤 대통령실 협조 여하에 따라 다음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관들은 11일 오전 11시 45분쯤 대통령실 민원실에 도착해 출입 절차를 밟았지만 대통령경호처 측이 응하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다.
이는 대통령실이 갖는 특수성 때문으로 보인다.
수사, 기소와 재판까지 아우르는 형사사법 활동의 근거 법률이자 절차법인 형사소송법에는 국가적 기밀을 다루는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내용이 규정돼 있다.
형소법 제111조(공무상 비밀과 압수)에는 공무원이 소지·보관하는 물건에 대해 본인 또는 해당 공무소가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것임을 신고할 때에는 그 소속 공무소나 감독 관공서의 승낙 없이는 압수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해당 공문서나 감독 관공서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해 ‘국가 중대 이익’인 경우에만 수사를 거부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대통령실은 대통령기록물 등 역사적인 기록을 생산하고 남기는 공무 장소라는 특성에 비춰볼 때 이번 압수수색 역시 그런 요인이 고려돼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도 전날 상황을 설명하면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는 대통령실이라는 장소 특수성을 감안해 임의제출로 먼저 자료를 확보하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임의제출이 불가능할 경우 관리자 허가에 따라 압수수색 하라는 단서가 있었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대통령실이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며 “법과 이전 정부에서의 관례에 입각해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결국 양측 입장을 종합하면 이번 대통령실 압수수색은 수사의 기밀성을 중시하는 전통적 개념의 진입식 압수수색 형태가 아닌 일정 부분 조율해 임의제출 하는 허가식 압수수색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대통령경호처는 형소법 규정과 대통령기록물 및 경호법 등을 토대로 수사기관의 청와대·대통령실 경내 진입을 불허해 왔다. 이에 따라 경내가 아닌 청와대 연풍문 등 일정한 지정 장소에서 임의제출한 자료를 받아오는 방식이 활용됐다.
과거 청와대 시절에도 압수수색 시도는 이 조항에 따라 크고 작은 충돌을 치렀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인 지난 2018년 12월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2019년 12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등 총 네 차례 청와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됐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앞선 세 차례의 압수수색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마무리됐지만 2020년 1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 때 청와대는 임의제출을 거부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국정농단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7년 2월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을 비롯해 세 차례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있었고, 검찰은 모두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청와대가 압수수색 불승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헌정사상 첫 대통령실 압수수색 시도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11월 이뤄졌다. 당시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을 수사하던 이광범 특검팀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자료를 임의제출 받는 데 그쳤다.
다만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청와대와의 협의를 거쳐 내부 자료를 제출받은 전례도 있다.
2013년 12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가족부 열람·유출 의혹 사건 당시 청와대 측의 자체 조사 자료를 검찰이 임의제출 받았고 2014년 12월에는 최서원(최순실) 씨 전 남편인 정윤회 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사건에도 청와대 문건 10여 건을 검찰이 임의제출 받은 바 있다.
한편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에서 공식 생산되는 문서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될 수 있어 임의로 삭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임의적인 판단으로 특정 문서를 없앤 경우 흔적이 남게 되고 이는 차후 증거인멸 정황으로 간주돼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