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의 재해 위험 감소에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가 희망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찍으로만 다스리기에는 복잡한 역학·이해관계가 얽힌 사회 문제를 형벌 편의주의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장 안전 인프라는 물론 종사자들의 인식 개선방안 등 획기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민주·대전 중구)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상위 2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총 1868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 기간 사망자는 35명으로서 전년(25명) 대비 25%나 급증한 수치다. 이는 정부 건설공사 종합정보망(CSI)에 등록된 사망 사고,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자, 1000만 원 이상의 재산 피해 사고를 포함한 통계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전체 사상자 수는 전년(2259명)보다 17.3% 줄어들었으나 2년 전인 2022년(1666명)과 비교하면 오히려 12.1% 증가했다. 그나마 부상자는 1833명으로서 전년(2231명)보다 17.8% 감소했다. 건설사별로는 대우건설이 7명의 사망자를 기록해 가장 많았고, GS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각각 5명, 현대건설이 3명으로 뒤를 이었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상위 20대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총 96명, 부상자는 5697명에 달했다. 기간 동안 삼성물산(682명)과 현대건설(349명)은 매년 사상자 수 1위와 2위를 유지했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건설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 호반건설, DL건설, 중흥토건 네 곳이었다. 다만 삼성물산은 부상자가 273명으로 가장 많았다. DL건설(172명), 현대건설·SK에코플랜트(각 141명), 현대엔지니어링(137명), 계룡건설(112명)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난해 1000만 원 이상의 사고 피해가 발생한 건설사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SK에코플랜트, DL건설, 서희건설 등 8곳으로 나타났다.
도시 개발에 따른 공사 현장이 많고 소규모 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는 여건상 산재 사고 발생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도내 산재 사망의 70%가량이 건설·제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경기도는 산재 예방 종합계획(2023~2026년)에 따라 2022년 0.51인 산재 사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 당 산재사고사망율)을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고작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그 효용성을 단정적으로 부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현행법이 무결한 수단이 될 수 없는 한 정밀한 분석 평가를 통해 개정 방안은 물론 산업재해 감소를 위한 병행 수단을 찾는 작업을 멈춰서는 안 된다.
박용갑 의원의 “처벌이 아닌 예방 위주로의 법 개정 논의와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 및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개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박 의원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주관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토론회에서도 법 개정의 필요성과 함께 “예방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쏟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 감소를 위한 기본적인 통제수단이다. 제일 좋은 것은 역시 완벽한 재해 예방시스템 구축이다. 산업현장에 남아있는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을 일소하는 게 그 첫 번째 단계다. 알면서도 재원 부족 등으로 안전시설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도 일일이 찾아서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처벌만능주의를 뛰어넘는 선진적인 산업 안전 환경 구축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