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은 24절기 중 첫 번째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었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라곤 하지만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강추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이없는 계엄령 선포 이후 더욱 냉각된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사회 분위기 등이 날씨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연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처럼 혹한이 지속되면서 질병청은 저체온증과 동상·동창 등 한랭질환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특히 저체온증의 경우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심각한 한랭질환이다. 대부분의 한랭질환의 84.5%가 저체온증이라고 한다. 매년 300~400명의 한랭질환 환자가 발생하는데 지난해 12월 1일부터 올해 2월 2일까지 한랭질환자는 233명으로 집계됐다. 대표적인 저체온증 고위험군은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 저소득층 노인 등이다. 이들은 음식섭취나 의복 난방 등 보온이 충분하지 않아 건강상태가 우려되는 사람들이다. 한파는 이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다.
이에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강추위에 취약한 쪽방촌 주민들에게 밤 추위 대피소 이용권을 지급하고 있다. ‘동행목욕탕’은 동네 목욕탕을 활용한 사업이다. 난방이 충분하지 않거나 수도 동파, 보일러 고장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쪽방촌 주민들이 따듯한 물로 몸을 씻고 추위에 떨지 않고 밤새 쉴 수 있는 밤추위 대피소다. 지난해 총 3만96541929명이 이용하는 등 성과가 좋아 이용 기간을 60일에서 90일로 확대했다. 쪽방 주민과 사업주가 상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업이다.
문제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다. 쪽방주민들은 그나마 몸을 뉠 거처라도 있다지만 노숙인들은 강추위와 배고픔에 속수무책이다. 많은 지방정부들이 노숙인쉼터를 마련하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노숙인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긴 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자발적인 노숙도 정부와 지방정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관계기관에서는 이들에게 쉼터 입소를 권유하지만 많은 노숙인들은 이를 거부한 채 거리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노숙인이 된 이유는 다양하다. 이들은 한때 남부럽지 않은 사업체를 운영했다가 실패한 전직 사장님도 있고, 사기꾼에게 걸려 전 재산을 날린 직장인, 회사에서 내몰린 실직자,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온 가장 등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경기신문은 ‘살을 에는 추위에 떠는 취약층 바람막이 돼줄 관심지원 절실’(6일자 7면)르포 기사를 통해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열악한 환경의 노숙인들의 상황을 보도했다. “미리 챙겨둔 옷들을 껴입어도 춥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한다” “여름에는 괜찮지만 겨울에는 자다가 동사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춥다” 기자는 기온이 최대 영하 11도까지 내려간 지난 4일 수원역 인근에서 만난 노숙인들의 말을 전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털모자와 목도리, 두꺼운 옷을 껴입었지만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코와 볼은 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다’면서 ‘추운 날씨에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말을 더듬었으며 몸을 떨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숙인들은 수원역 내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민원 때문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사에 노숙인들이 모여 있으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목욕과 세탁이 용이하지 않은 탓에 위생과 외관적인 문제가 있고 술에 취한 노숙인이 시민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원시와 다시서기노숙인지원센터 등이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있지만 ‘종속되기 싫다’ ‘술을 마실 수 없다’ ‘전과나 채무 등 신상 정보가 드러날까 봐’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봉사단체,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꾸준히 적극적으로 재활 방안을 모색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