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로부터 독립된 교육정책 수립을 목표로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배용 위원장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인사 청탁 의혹에 휘말리며 사퇴하자, 국교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제도적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여기에 내부 갈등과 정책 성과 부재까지 겹치며 “과연 국교위가 필요한 기구인가”라는 회의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과거 김 여사에게 10돈짜리 금거북이를 건네며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논란 직후 그는 “송구하다”며 지난 1일 사퇴했지만, 국교위가 내세운 ‘정치로부터 독립된 교육정책’이라는 존재 이유는 크게 흔들렸다.
특히 이 위원장은 과거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전력이 있어 ‘편향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국교위가 특정 정치적 성향의 영향을 받는다는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국교위는 정권 교체 때마다 뒤집히는 교육정책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2022년 7월 출범했다.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초등부터 평생교육까지 국가교육의 중장기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규모는 30여 명에 불과해, 수백 명 단위로 운영되는 다른 중앙행정기관과 비교할 때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또한 내부 정치적 대립은 제도 운영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난해 보수 성향 위원들이 수능 이원화 안건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자 진보 성향 위원들이 회의를 보이콧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정대화 상임위원은 “국교위의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교육 현장의 평가도 냉담하다. 도승숙 참교육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은 “그동안 국교위에서 교육 개혁이나 현장 정책 논의가 사실상 없었다”며 “공론의 장도, 연구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운영 방식이 무능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제도를 개선해 국교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한 위원장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국교위라는 제도 자체의 설계 결함을 드러냈다고 본다. 정치적 독립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현실에서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고, 제도적 권위는 취약했다는 것이다.
출범 2년 만에 위원장 사퇴, 내부 갈등, 성과 부재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국교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계 안팎에서는 “지금이라도 국교위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되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 경기신문 = 안규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