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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청와대 대통령 관저, 다시 지어야 한다

 

대통령 관저는 단순한 집이 아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거주하는 공간이자, 국가 운영과 위기 대응의 최전선이다. 외국의 정상들이 방문하는 외교 무대이기도 하며, 국민의 신뢰와 자존심이 투영되는 국격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통령 관저의 위치와 조건은 단순한 ‘주거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국가 경영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 대통령 관저는 여러모로 대통령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1990년 현대건설이 공사를 맡아 지을 당시, 자연 지형을 거칠게 훼손한 사실부터가 문제였다. 암반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고, 본래 맑은 물이 흐르던 계곡을 매립해 관저 부지를 조성했다. 그 위에 15미터가 넘는 인공 축대를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대통령 부부가 머무는 안방마저 이 축대 위에 놓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웅장할지 모르나, 터 자체가 불안정하고, 자연을 거스른 인공적 구조물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또한 관저는 청와대 구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이는 외견상 위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고립감을 주고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지 않는 터다. 전통 풍수에서는 이를 ‘고한(孤寒)’이라 불렀다. 나아가 관저와 대통령 집무실은 도보로 20분 이상 떨어져 있다. 긴급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필수적인 국가 지도자에게 이는 심각한 약점이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위기 대응의 생명줄과도 같다.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관저에서 거주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년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구속되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았으며 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후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구속과 탄핵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물론 정치 지도자의 운명을 단순히 거주 공간의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일관된 불운의 연속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터가 지닌 부정적 기운, 인위적 조성 과정의 문제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럼에도 지난 30여 년간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언론은 관저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지 않았고, 건축·지리·행정 분야 전문가들도 이를 지적하거나 공론화하지 않았다.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침묵이었을까,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국가 운영의 기반이 되는 대통령 관저 문제를 소홀히 다룬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통령 관저는 국민과의 신뢰를 담보하는 공간이자, 국가의 품격을 드러내는 무대다. 따라서 새로운 관저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단순히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안정과 품격을 갖춘 공간이어야 한다. 동양 고전에서 말하는 ‘화이불루(華而不陋)’―곧 화려하되 누추하지 않은 경지를 실현하는 관저가 되어야 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무리하게 터를 닦아 올리는 방식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가 청와대로 복귀한다면, 단순히 기존 관저를 리모델링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백 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건축학·지리학·사회학·행정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관저를 세워야 한다. 대통령 관저는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신과 국운을 담는 집이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청와대 내부의 더 합당한 터에, 새로운 대통령 관저를 짓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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