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27, 9·7 대책 등 잇달아 내놓은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로 급등하던 수도권 집값과 불어난 가계부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실수요자들에게 닥친 후폭풍은 심각하다. 결혼·교육 등 생활상 이유로 주거이동을 계획한 실수요자들의 망연자실은 깊어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줄고 대부업 대출신청과 불법 사금융피해도 폭증하고 있다. 순수 실수요자들이 당하는 혹독한 고통을 풀어줄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14일 금융권 집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9월 11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63조 702억 원으로, 8월 말(762조 8985억 원) 대비 1717억 원 증가했다. 하루 평균 156억 원 증가한 셈인데, 이는 8월 하루 평균(1266억 원)의 8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 포함) 잔액은 524억 원이 줄었다. 월 단위 감소가 확정되면 작년 3월(-4494억 원) 이후 1년 반 만에 처음이다. 반면 신용대출은 같은 기간 1823억 원 늘어 대조를 보였다. 주담대 감소세에는 이례적 규제가 직격탄이 됐다. 정부는 6·27 대책을 통해 수도권 전역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6억 원으로 일괄 제한했고, 9·7 대책으로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도 2억 원으로 묶었다.
주택을 구매하려던 실수요자에게 전세자금 대출 길마저 막혀버리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경기신문의 취재 결과 낭패를 보고 있는 실수요자 사례들이 즐비했다. 수원 광교 아파트(시세 13억 5000만 원)를 보유한 연봉 1억 4000만 원의 한 40대 대기업 개발자는 내년 자녀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목동 아파트(20억 원대) 매입을 추진하다가 주담대 한도가 줄면서 소유 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목동 전세 입주로 전략을 바꿨지만, 9·7 규제로 이마저도 막혔다.
실수요자 타격은 신혼부부·30대 맞벌이 가구 등 젊은이들에게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아파트(시세 14억 원)를 매입하려던 예비부부는 6·27 대책 전까지는 7억 7000만 원(주담대 7억 원+신용대출 7000만 원)까지 가능했지만, 규제 이후 총액은 6억 2000만 원으로 축소됐다.
급전을 못 구한 서민·소상공인들이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현상도 뚜렷하다. 정부의 ‘6·27 대책’ 이후 대부 업체의 신용대출 신청 건수가 불과 2주일 사이에 폭증해 7월 11일까지 2주간 상위 30개 대부 업체의 하루 평균 신용대출 신청 건수가 7201건으로서 무려 85.8%나 늘어났다.
불법 사금융피해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금융 당국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피해 신고·상담은 984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건수(1만 5397건)의 63% 수준으로서 급증세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불법 사금융피해 확산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비용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출 총량 억제에 머무르지 않고, 금융 취약 계층을 위한 실질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낮춰 금융 취약 계층에 맞춘 대출상품을 개발하고,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해법도 내놓는다.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의 금융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가 병행돼야 지속 가능한 금융 안정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만인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어떤 정책이 선의를 가진 평범한 국민에게 재앙적 요소로 작용한다면 이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꿈을 희생시키는 일은 현대 선진국에서는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대출규제로 인해 앞길이 막힌, 선의를 지닌 실수요자의 애환을 풀어주는 보완 조치는 더 미뤄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