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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칼럼] 기리(義理)와 온(恩)

 

한 동안 모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스펙을 쌓기 위해서다. 따라서 학위 논문을 쓸 능력이 아주 부족하다. 그런데도 학교는 그들에게 논문을 쓰게 하고 학위를 준다. 시스템이 이러하니 학생들은 너도나도 박사 학위를 쓰겠다고 야단이다. 여러 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내게 논문 지도를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안타까운 나머지 논문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줬다.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주제까지 잡아주고 지도에 지도를 거듭했다. 그 중 몇은 박사학위를 따고 내게 말했다. “교수님,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언약을 지킨 이는 거의 없다.

 

이 씁쓸한 경험 때문일까? 나는 요즘 은혜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무척 그립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갚고자 하면 더 나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회 전체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본 긴자 마루칸(銀座まるかん)의 창시자 사이토 히토리(斎藤一人) 씨가 떠오른다. 그는 인생에서 의리(Giri)와 인정(Ninjyo), 그리고 은혜(On)를 소중히 여긴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도이고 인정은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 그리고 은혜는 삶에 있어서 인간의 품격이다. 이 셋을 히토리 씨는 마루칸 상품을 통해 환기시킨다. 마루칸 상품을 구매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뒷면에 ‘일본 한방 연구소 GN 1’이 쓰여 있다. ‘GN 1’은 ‘의리와 인정이 으뜸’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기본을 소중히 여긴 히토리 씨는 일본의 납세왕이자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백만장자로 성공했다.

 

의리와 인정은 동양의 가치만은 아니다. 서양 역시 매우 귀중히 여긴다. 지난달 25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이를 보여주는 흐뭇한 이벤트가 있었다. 한 목수의 특별한 결혼식이었다. 그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왕관을 쓴 왕족만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이날은 기존의 틀을 깨고 일반 시민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 주인공은 마르탱 로랑스(Martin Lorentz). 2019년 4월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탄 후 재건 작업에 참여한 젊은 목수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800년 전 전통 방식으로 들보를 다듬고 때로는 밤낮으로 작업한 후 성당 꼭대기에 매달려 모든 조각들을 조립했다. 그 후 파리 대주교에게 그곳에서 자신의 결혼식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울리히 대주교는 이 요청을 예외적으로 수락했다. 주야로 일한 로랑스의 노고에 보답한 것이다.

 

혼례 미사를 집전한 리바도 주임 사제는 “로랑스 부부가 이 성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고, 로랑스는 “자신의 사랑을 온 세상,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라며 가슴 벅차했다. 그의 결혼식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SNS에는 “최고의 축복을!”과 같은 축하 메시지와 함께 “아름다운 노트르담을 열정적으로 복원한 모든 장인들에게 바치는 헌사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약 7억 유로가 투입된 ‘파리 노트르담 재건’에는 2000여 명의 장인이 참여했다. 목수들의 작업은 엄청났다. 이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해 훈장을 수여했다.

 

일본 속담에 “부모의 은혜보다 의리의 은혜”라는 말이 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보다 돌보는 사람의 은혜가 먼저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신용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기본 가치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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