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어드의 냉장고는 오늘날 미국 알래스카주를 비아냥대는 말이다. 알래스카주는 아메리카 대륙 북서쪽 끝에 있는 미국의 주다. 인구는 백 만 명도 안 되지만 면적은 자그마치 한반도의 7배이며, 대한민국의 15배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다. 미국 내에서도 본토인 48개 주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알래스카 지역은 1741년 덴마크 탐험가 비터스 베링(Vitus Bering)이 이끄는 러시아 선원들이 북태평양을 탐험하다가 발견하였다. 베링은 당시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의 위탁을 받아 탐험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은 자연스럽게 러시아 땅이 되었다. 이후 영국, 스페인, 미국 등지에서 탐험가들이 왕래하였고, 바다 수달 등 여러 가지 동물모피를 거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피 교역이 줄어들면서 미개발 상태였던 알라스카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알래스카 지역은 1799년부터 1867년까지 러시아 아메리카 회사가 관리하였다. 그런데 이즈음 러시아는 크림 전쟁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때마침 당시 미국 국무 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William Henry Seward)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알래스카 전 지역을 불과 720만 달러, 즉, 1㎢당
요즘 우리 사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투(me too)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본래 미투는 영어의 ‘나도 그래~’라는 의미이지만, 요즘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는 성폭력 피해 고발운동으로서 ‘나도 당했다’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미투 운동은 2017년 미국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여성 배우들의 연이은 폭로로 시작되었다. 여배우들의 폭로로 미국 연예계에 강력한 미투 운동이 촉발되었고, 이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들이 미투의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었다. 이 운동은 순식간에 미국 연예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고, 연예계만이 아닌 정치계, 학계,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운동이 일고 있다. 우리사회도 미투 운동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벌써 미투 운동에 연루된 배우와 대학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차세대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된 정치인이 미투 운동에 거의 낙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외에도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가해자가 200여 명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이렇듯 미투 운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또한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그동안 그릇된 남녀간의 성 사고와, 상하간의 왜곡된 성 관념 등에 획기적인 전환을 기대
관자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널리 알려진 관중이라는 사람으로 중국 춘추시대 정치가이며 사상가였다. 관중은 친구인 포숙아의 추천으로 당시 중국 변방에 위치한 제나라를 군사, 경제 등 다방면에서 강국으로 만들었다. 나아가 당시 제나라 왕이었던 환공(桓公)을 중국 최초의 패왕(覇王)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관중은 제나라의 정치, 경제, 행정 등 내치(內治)와, 각 제후국들을 하나로 규합하여 이끌어나가는 등의 외치(外治)를 두루 성공시킨 뛰어난 인재였다. 춘추시대 강대국들 틈에 끼어 별 볼일 없던 제나라를 일약 최강의 나라로 만든 것은 순전히 그의 능력덕분이었다. 후세의 사가들은 그를 중국 역사상 최초의 명재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관중과 환공 사이는 깊은 원한이 얽혀있는 사이였다. 제나라 양공이라는 왕이 내부 반란군에 의해 피살되자, 왕의 빈자리를 두고 형인 공자 규와 동생인 공자 소백이 다투었다. 관중은 규의 편에 서서 소백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뒷날 왕으로 등극한 소백, 즉, 제나라 환공은 관중을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관중의 친구인 포숙아의 강변으로 그를 살려줄 뿐만 아니라, 재상으로 등용하는 과감한 결단을 보여주었다. 이후 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 동계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제23회 대회는 한국의 평창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동계올림픽은 겨울 종합 스포츠 대회로서 눈 또는 얼음 위에서 열린다는 것이 특징이다. 종목으로는 알파인 스키, 바이애슬론, 봅슬레이, 크로스컨트리, 컬링, 피겨 스케이팅, 프리스타일 스키, 아이스하키 등 대회가 거듭될수록 종목이 추가되고 있다.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보다 참가하는 나라 수가 적다. 그 이유는 겨울철 운동을 할 만한 나라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 국가가 동계올림픽을 여러 번 개최한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이 4번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는 3번, 이탈리아, 일본,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은 2번씩 개최하였다. 한국은 평창동계올림픽이 처음이다. 기온이 높은 나라는 아무래도 올림픽 개최나 참가여건이 불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중계기술의 발달 등으로 동계올림픽 인기가 향상되고, 방송 중계권 판매, 광고수입 등으로 많은 수익이 창출됨에 따라 지구촌의 큰 대회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정신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그것은 친선
작년 개봉되어 나름 흥행에 성공한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는 조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임금과 신하들의 복잡한 심경과 내·외부 상황을 그린 작품이었다. 영화는 특히 최명길과 김상헌이라는 두 인물을 대비하며 스토리를 전개하였다. 역사 소재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사실과 허구를 동반한 면이 있다.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도 그런 트랜드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한 듯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영화의 작품성은 차치하고라도, 두 인물을 통해 본 명분과 실리는 작금의 정치상황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궁금하였다. 일단 영화 속 두 인물을 살펴보면, 먼저 최명길은 임금의 의중을 꿰뚫어 보면서 최대한 실리를 추구하는 작전을 구사한다. 반면 김상헌은 성리학적 명분론과 의외의 요행수에 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적어도 필자는 두 사람을 그렇게 보았다. 전란이 터지자, 최명길은 임금에게 병란 초기 호미로 막을 방책을 조심스럽게 진언한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의 요구대로 왕자를 인질로 보내고 서둘러 큰 전란을 막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자식을 보내는 일에 주저하고, 어떻게든 요행적인 일을 기대하였다. 임금도 김상헌도 갖고 있던 요행수라는 것은, 명나라가 청나라 뒤퉁수를 쳐주
중국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B.C.551~B.C.479)는 유교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 인(仁)의 실천을 강조하며, 그것으로 인간 세상을 교화시키려고 애썼다. 내적으로 인을 간직하고 외적으로 인을 실천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자세가 군자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수기는 곧 스스로를 이기고 인을 닦으며 예를 갖추는 것으로서, 이 때 비로소 인격완성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사상적 논지를 펴온 인물로서 지금까지도 널리 숭모를 받으며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공자가 사상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민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였다. 다소 의외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민생정치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반증한 것이다. 그는 민생정치에 있어서 신뢰를 중시하였다. 정치는 모름지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충분한 군비, 국민이 굶는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하며, 여기에 국민의 신뢰도 얻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만약 이 중에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군비를 버려야 하고, 다음으로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식량을 버려야 하고, 마지막으로 남길 것은 국민의 신뢰라고 하였다. 신뢰를 잃은 정치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웅변한 것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철학의 독보적인 존재들이다. 두 사람은 사제관계로도 유명하며, 서로 같은 듯 다른 사상으로 라이벌로 언급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로 이어진 고대 서양철학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들 철학자는 고대 서양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마케도니아, 로마 시대 중,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시대에 할동한 사람들이었다. 먼저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보편타당한 절대적이고 객관적 진리론을 수용하여 관념론적 이상주의 철학을 정립하였다. 대중에 의한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깨달은 자, 즉, 철인(哲人)에 의한 정치를 지지하였다. 또한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존하는 윤리적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플라톤이 대중정치를 혐오한 이유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관련이 깊었다. 무지한 사람들이 마녀 사냥하듯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보고 대중의 어리석음에 회의를 느낀 것이었다. 그가 줄곧 주장한 주지주의, 즉, 사람이 알아야 선해진다는 이데아 사상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론적 현실주의 철학을 내세우며 대중에 의한 민주주의 정치를 지지하였
관중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제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이오(夷吾)이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으로 잘 알려진 인물로서 관중 또는 관자라고 부른다. 그는 대략 기원전 725년에 제나라 영상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웠던 그는 친구 포숙아와 장사도 하는 등 일찍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성인이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각기 다른 제나라의 공자를 섬기는 처지가 되었다. 관중은 형이었던 공자 규를 섬겼고, 포숙아는 동생인 공자 소백을 섬겼다. 훗날 공자 소백이 왕이 되어 정적이었던 규를 죽이고, 그의 휘하 참모인 관중마저 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 친구 포숙아가 왕에게 강력건의를 하여 관중을 살려주게 되었고, 나아가 재상으로 임명토록 추천하였다. 포숙아의 배포 큰 아량으로 관중은 사지에서 일약 재상으로 승천한 것이었다. 이후 관중의 강한 제나라 만들기는 본격화하였다. 정적인 관중을 받아들인 제나라 왕 환공(桓公)은 관중의 부국강병책을 대폭 수용하였다. 그는 나라에 물질이 풍부해야 강한 군대도 양성할 수 있고, 백성들의 삶도 윤택해지며 예절을 지키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관자(管子)라는 책에서도 이러한 신념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는 ‘무릇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로 공자와 더불어 중국철학의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다. 그의 사상이 도교와 얼마만큼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인류사상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우리가 익히 들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상선약수(上善若水) 등과 같은 내용은 그의 사상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노자의 생애에 관해서는 정통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사마천이 지은 역사서 ‘사기’에 노자와 공자의 만남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공자보다 다소 앞선 시대에 산 것으로 추측된다. 사기에 의하면, 노자가 주나라에 머무를 때 한 젊은이가 찾아와 ‘예’에 관해 질문하였다. 노자는 답하기를, “옛 성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그들의 가르침만 남아 있다. 군자는 때를 잘 타고 나면 귀한 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산야에 묻힌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보관하여 겉으로는 빈약해 보일지라도 내실은 강화한다. 마찬가지로 군자도 덕을 몸에 지녀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처럼 해야 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교만, 욕심, 위선, 지식 등을 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이때 가르침을 받은 젊은이가 공자였다. 훗날 공자는 제
하늘은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철학가나 사상가들은 하늘을 신비롭게 여기고 인간의 삶을 주관하는 실체로까지 보았다. 공맹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가(儒家)는 하늘의 명령을 도덕의 최고 원리로 삼았고, 노장(老莊)학파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묵자나 음양학파에서는 하늘이 인간 길흉화복을 판단한다고 주장하였다. 하늘의 현상은 인간 능력 밖의 존재로서, 이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순자는 이러한 조류에 반기를 든 학자였다. 그는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유학자로서 맹자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다. 맹자가 하늘을 실체적 존재로 여기고 경외할 것을 주장한 반면, 순자는 하늘의 현상은 그저 자연일 뿐이라고 일축하였다. 그는 하늘은 어디까지나 자연적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밤과 낮, 사계절 변화, 일식과 월식, 지진과 폭풍, 가뭄이나 홍수 등은 모두 자연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눈에는 왕이 정치를 잘못하여 가뭄이 들거나 흉년이 드는 것, 또는 홍수로 물난리가 나는 것 등은 모두 정치와 무관한 것이었다. 자연현상은 자연의 일부일 뿐, 순자는 사람으로서 하늘을 정복해야 한다(人定勝天)라고까지 설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