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년 전 어느 날 사회면 톱기사다. 6·25 때 월남하여 성공한 한 노인이 강도에게 살해되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돈 참 많이 벌었다. 그의 여러 빌딩들 가운데 가장 허름한 게 장충동에 있었다. 노인은 그 건물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삼각진 작은 공간에서 일을 봤다. 낡은 전기장판, 전화, 오래된 치부책들 몇 권, 볼펜 두어 자루, 목침 하나가 용품의 전부였다. 점심은 항상 혼자서였고 언제나 값싼 짜장면이었다. 노인은 이렇게 살아서 부자가 되었고, 그 노하우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화려하고 당당한 부자들의 가슴 속에 이 노인의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저녁, 스무살 쯤 된 청년이 침입하여 주판을 놓고 있던 노인을 놀라게 했다. “돈 내놔.” “뭐 이 도둑놈의 새끼야.” 노소(老少)가 실랑이 하던 중, 허리춤을 잡힌 청년이 위협용으로 품고 간 칼로 노인을 찔렀다. 부노(富老)의 삶은 그 시간 거기서 멈췄다. 어설픈 청년 강도의 삶 역시 사실상 끝났다. 나는 당시 20대 신문방송학과 복학생이었는데, 그 시절 수첩에 아쉬운 미담들이 적혀있다. 지갑을 털어 주면서, “앞날이 창창한 놈이 왜 이렇게 사냐? 이거 가져가 쓰고, 다음에
내가 외운 최초의 한시(漢詩)는 '대장부가'(大丈夫歌)다. 복학하여 '맹자 원전강독'을 들었는데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중국에는 수교 초부터 드나들었다. 현지 파트너들과 만찬을 할 때면 매번 통역사인 친구가 여급에게 백지와 펜을 부탁한다. 취기가 오른 나는 과장된 폼을 잡고 이 위대한 시를 내려 쓰곤 했다. 그러면 모두 놀란다. 한번은 그 덕분에 큰 계약을 쉽게 한 적도 있다. 중국측 대표가 맹씨였다. 그에게 이 시를 써주었다. '非常棒(비상봉)!'은 그의 칭찬. '엄청난 인물'이란다. 大丈夫歌(대장부가) 대장부의 노래 居天下之廣居(거천하지광거) 거하되 천하에서 가장 넓게 자리 잡으라 立天下之正位(입천하지정위) 서되 천하에서 가장 올바른 자세를 취하라 行天下之大道(행천하지대도) 행하되 천하에서 가장 거침 없이 나아가라 得志 與民由之(득지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하고 不得之(부득지) 獨行其道(독행기도)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닦아라 富貴不能淫(부귀불능음) 부귀는 그를 삿되게 하지 못한다 貧賤不能移(빈천불능이) 빈천도 그를 시시하게 만들지 못한다 威武不能屈(위무불능굴) 위력 권세도 그를 결코 굴복시키지 못한다 此之謂大丈夫(차지위대장부) 그
프랑스 하원이 건국이념 조항인 헌법 1조에 "공화국은 생물다양성과 환경보전을 보장하고, 기후변화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인류사회 전체가 직면한 시대적 요청을 명문화할 것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상원을 통과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확정하게 된다. 역시 프랑스답다. 이는 "프랑스는 '슬로우 푸드(slow food), 슬로우 라이프( slow life)'를 구가하는 나라가 되겠다", 는 천명이다. 실로 감동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의 기치와 가치가 이 품격 선언의 뿌리다. 역사적 사건들은 우연 같지만 예외 없이 필연이다. 과거는 현재의, 오늘은 내일의 원인이다.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지만, 3년 후 '슬로우 푸드(slow food) 선언'이 파리에서 채택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 180개국에서 10만명 넘게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그 선언문의 일부다. "산업혁명으로 최초로 기계가 발명되었다. 기계는 오늘날 우리 생활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다. 기계는 우리의 소중한 관습을 망가뜨린다. 사생활을 침해하고 식사시간을 줄여서 일하도록 '패스트 푸드'(f
지난 2009년 8월, 목포대학교에서 한ㆍ일 씨알사상 포럼이 열렸다. 나는 그 학술행사의 기획위원장이었다. 그 때 가장 인상적인 발표자는 오가와 하루히사(당시 동경대학 철학과 교수)였다. 그는 특히 다석 유영모(1890-1981)의 사상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는 " 선생의 '생각의 고결함'과 '생활의 검소함'은 21세기 생태위기를 구할 수 있는 심오한 사상"이라며, "죽을 때까지 한국의 다석 유영모를 연구하겠다", 고 엄숙히 선언했다. 뭉클했다. 다석은 심지어 백 리 먼 길도 걸어다녔다. 선생은 51세부터 91세에 죽을 때까지 1일1식을 했으며, 부인과는 '해혼(解婚)'이라 하여 각방을 썼다. 평소 "인류의 모든 문제는 '食'과 '色'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실천한 것이다. 선생은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사색과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재앙이다. 과식, 과소비, 과속을 특징으로 하는 인류사회는 지난 200년간 난폭하게 자연을 파괴하여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급속한 자멸의 과정이다. 어느 진보적인 환경론자는 이 바이러스 재앙 이전에 지구의 수명은 25년 남았다고 단정했다. 하루에 한 끼의 식사를 하고서도 아흔
시의적절한 우화 하나. "장자가 쌀독이 비어 말단관리인 친구에게 쌀 한 됫박을 얻으러 갔다. 친구가 말하기를, '걱정말어. 추수 끝나면 쌀 몇 가마니를 줄테니까.' 장자가 대꾸했다. '이 동네 오는 길에 뒤에서 누가 부르길래 고개 돌려 자세히 살펴봤지. 수레바퀴 패인 자국에 빗물이 조금 고였는데 거기서 물고기 한 마리가 헐떡거리며 날 부른 거였어. 왠 일인가 물었지.' '내 황해바다 용궁의 사신이오. 어찌어찌 하다가 이꼴 났으니 물 한 바가지만 속히 부어주오.' 내가 말했네. '걱정하지 마. 내가 황제를 설득해서 황해의 물줄기를 이쪽으로 끌어올테니...' 물고기는 눈 크게 뜨고 핏대를 올리며 나에게 온갖 저주를 다 퍼부었어. 지금쯤 죽었을 거네." 코로나19로 인하여 쌀독 비는 집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이 바이러스가 사실상 생사여탈권을 쥔 강적이다. 생업이 날로 위축되는 바람에 민초들은 지금 몹시 위태롭다. 특히나 제도의 사각지대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독거 노인들, 미혼모 등 소외계층, 부당한 계약으로 사실상 노예신분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존재의 위기로 몰고 있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물 한 바가지'와 '쌀 한 됫박'을 놓고 정쟁을 멈추지 않는
새해가 금세 한 달이나 지났다. 이승의 시간은 이렇게 고속으로 줄어든다. 내가 열여섯 살에 청운의 꿈을 꾸며 상경하던 장면이 엊그제 일인 듯 생생한데, 어언 45년 전이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志學). 서른 살에는 학문의 기초를 확고하게 세웠다(而立). 마흔 살에는 세상의 어떤 풍파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不惑). 다시 십 년 후, 오십에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知天命). 환갑의 나이에 이르자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다 들렸으며, 불필요한 잡음들은 걸러져 들어왔다(耳順). 칠순이 되니 마침내 어떤 일을 마음 가는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 그리고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연초에 매스미디어나 소셜미디어에서 나이와 관련된 한자 표현들을 자주 접한다. "이제 불혹이다", "지천명에 이르고 보니...", "내 나이 벌써 이순이라니..." 등의 문장들이다. 이런 글들을 대할 때마다 좀 불편하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서 공자 자신의 인격성장 단계를 나이와 연관지어 고백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학'이나 '이립'은 범부들도 가능한 경우겠지만,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 등은 필부들이 그 나이에 도달할
대통령이 나라 일을 하면서 임기 내내 사실상 돈벌이를 했다. 천문학적이었다. 그는 최근 재수감 되면서 "법치가 무너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파렴치의 극치다. 2300년 전, 맹자는 "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직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을 포함, 이 나라 공직자들은 공무를 마치 "처삼촌네 벌초하듯" 함으로써, 취약계층의 복지에 넉넉하게 쓸 수 있는 예산을 누수나 누전처럼 낭비하거나 불합리하게 사용한다. 일례로, 매년 연말이면 전국적으로 보도블럭을 개비하는데, 그 악습은 수십년 동안 변함 없이 반복된다. 공직사회의 무능함과 저급함을 스스로 자백하는 꼬락서니다. 그 한 가지 뿐이겠는가. 더 있다. 이른바, 천자(天子)나 다름없이 어느 정권에서든 대대로 초법적 대우를 받는 재벌 회장들, 거룩한 종교인과 존경받는 교육자 등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명예 보다는 돈을 우상으로 받들며, 다양한 욕망들을 온몸으로 추구하는 공통점있다. 부끄럼이라고는 없다. 가정하여, 이명박이 품격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