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없으면 어찌될까. 보호해줄 국가가 없기 때문에 살아있어도 투명 인간이다. 그래서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 했으니, 개인에게 국가라는 울타리는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고 희망이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그곳은 터전이 아니라 속박이 된다. 삶의 터전을 잃어보았기에 역할을 상실한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프게 경험했다. 조국이라는 말은 타향에서 서러움을 가진 사람에게 향수처럼 다가온다. 1960년대 부모님은 두만강을 건너 북조선으로 갔다. 처음에는 못 생긴 고무신에 딱딱한 과자도 좋았다고 했다. 사는 것이 형편없이 불편해서 아버지는 몇 번이고 이전에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막혀버린 국경과 가정이라는 멍에를 놓을 수 없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두만강 너머 정든 사람들이 그리워 흘린 눈물이 한(恨)이 되었다. 이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 국경을 넘을 합법적 여권이 나왔을 때 기쁨과 회한으로 뒤섞인 감정을 어찌해야 할지 안절부절 못했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지나간 세월은 어디에도 보상받을 곳이 없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1948
8월의 태양이 뜨겁다고 하지만 광복 77주년을 맞이하는 열기만 하겠는가. 독립운동의 가치와 의미를 나누는 각종 기념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렸다. 해방이 가져온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에게 해방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기념해야 하지.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은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북쪽의 반발은 거세다. 쏟아내는 막말은 거칠고 수위를 넘는다. 분단이 가져온 불신과 몰이해는 지켜보는 사람조차 숨가쁘게 한다. 유일하게 남북은 8월15일을 해방의 날로 인식하고 기념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정책 구상도 이날 제시한다. 남쪽에는 해방과 분단을 자각할 수 있게 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각종 기념행사가 많다. 기억하건데 북쪽에서의 8월 15일은 남쪽에서 열리는 행사만큼 요란하지 않다. 북쪽은 1995년부터 8월 25일을 선군절로 기념한다. 8월 25일은 선군정치 시작을 기념하는 국가적 명절이자 휴일이다. 그 시기 나는 고향을 떠났고 북쪽에서는 군(軍)을 우선하는 정치를 했다. 이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넜다. 그렇게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6년을 땅속 칩거하다가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으면 매미가 된다. 그리곤 짝을 찾느라 저리도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본능에 따라 울고, 짝을 만나면 사랑을 하고 그러다가 어길 수 없는 때가 되면 사라진다. 언제 아플 시간이 있을까.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그때는 그랬다. 힘이 없었잖아. 그리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미물같은 매미도 할 일은 다 하고 사라진다. 너덜거리는 시간을 뒤져봐야 한숨만 나오지만 그래도 도대체 머리가, 아니 심장이 왜 아픈지 아무리 최고의 병원 의사를 찾아도 진단도 처방도 못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혹여 북쪽의 지도자는 이러한 변명은 하지 말았으면. 옥수수도 여물어 가는데, 나만은 살아 있어 매미 울음소리가 덧없이 커지는 8월이다. 태어난 고향이라고 부모 형제의 소식은 알고 싶어 생명줄 잡고 이 글이나마 쓰는 것이니 북쪽도 남쪽도 내 고향이요, 광복을 위해 싸운 사람들은 분단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되었고, 어디서 살든지 배부르면 고향이지 편한 생각도 하지만. 너무도 오랜 시간 지나 잊혀도 그놈의 매미소리 때문에 옥수수 알이 목에 걸린다.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되갓구나’ 평양냉면에 평양 소주에 화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면서 7월이 지나간다. 장마전선이 끝난 것은 아니고 비구름에 태풍까지, 멋대로 상륙하고 북상하면서 한반도를 지날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시간, 잠시 TV이나 전화기는 꺼놓고 물안개 오르는 곳을 찾아가 보자. 오물 찌꺼기가 밀려간 작은 냇가는 산속 계곡의 물처럼 맑고 새소리는 또렷하다. 옥수수는 우쩍 자라 이삭이 패었고 나뭇잎은 푸르다. 해질녘 된장 넣은 통발을 논이나 강가에 놓고 아침에 나가면 작은 물고기들이 오글거린다. 이것들을 새치네라고 하든지, 세치네라고 하든지 세치밖에 안되는 것이 팔딱이는 힘이 하도 세서 복날 더위를 가셔 줄 여름 보양식으로 지금이 적기다. 소금에 박박 문질러 씻어 호박이나 풋고추, 깻잎을 넣어 끓이면 세치혀의 입맛을 살린다. 새치네를 모르는 곳도 있고, 이것 저것 섞어서 끓인 것을 새치네 탕이라고도 하니 맛대로 멋대로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삼복에 이것을 먹었다. 그냥 퉁쳐서 어죽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천렵이라고도 한다. 여럿이 강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뛰어다니며 물고기 몰이를 해서 잡는다. 강변에 가마를 걸고 장작불을 피워놓고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 가마 가득 끓여 놓고 늘어지게 하루를 즐긴다. 기타를 잘
밤새 천둥을 동반한 굵은 비가 내렸다. 낮에도 앞을 가려볼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강물이 불어나면서 교통이 통제되었다. 이북지역인 북쪽에도 28일 밤부터 7월 1일까지 개성과 강원도 황해남북도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경보가 있었다. 그리고 평양을 비롯한 일부지역에 위험 수위를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남북이 동시에 집중호우가 내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지만 사전 통지도 없이 황강댐의 방류는 불안한 예감을 넘어 괴씸한 생각마저 든다. 갑작스러운 폭우는 북쪽에서 최악의 재난상황이 된다. 도로와 철길이 파괴되고 농경지가 물에 잠기면서 눈앞에서 다 자란 농작물을 잃게 된다. 2020년에도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한 일부지역이 폭우로 피해를 입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최고지도자가 황해북도 은파군을 방문하면서 식량이 우선 공급되고, 빠른 수해복구를 지시했다. 폭우로 농경지와 도로, 철도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빗물로 인한 식수 오염으로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생겨나 주민들을 괴롭힌다. 북쪽의 장마는 6월 말부터 길게는 8월 초까지 이어지는데, 폭우가 내리면 좁은 강이 삽시에 불어나고 심하면 강뚝을 넘는다. 수면이 낮은 곳은 물난리
6·25전쟁의 그날이 오고 있다. 고요한 일요일의 평화를 깨었던 총성이 울린지도 반세기를 넘었다. 그럼에도 이 땅에는 아직도 평화가 오지 않았다. 거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예상과 다르게 장기화 되고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 폭탄, 탱크, 피난민, 이러한 것은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에는 기억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전쟁은 다시 반복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꼭 무력으로 싸운 전쟁의 경험만이 아니다. 가볍게 시작하자면 북쪽의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0년대의 이야기이다. 한두명도 아니고 무리지어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전쟁과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6·25전쟁에 대해 2011년 개봉된 영화 '고지전'에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싸우기 싫으면서 싸워야 했고, 살고 싶으면서도 맞서야 했던 것이 '고지전'이라 한다면, 북쪽 고향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은 죽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죽기내기로 살아내야 했다. 유일할 방법은 도강, 탈출하는 것이다. 6·25전쟁으로 분단이 되었고 그러므로 북쪽 사람들이 많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피난민들이 많이 왔으므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 시댁, 우리
장미가 아름다운 유월이다.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가열차게 달아올랐던 지방선거도 끝났다. 심판할 국민이 있고 공정한 규칙이 있다면 전쟁같은 선거라도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떠하리. 경험을 얻고 다시 도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력을 사용해 동족끼리 죽고 죽이면서 파괴한 전쟁에 비기겠는가. 유월은 한갓 풀대의 생리보다도 못한 인간의 무모한 장난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온 달이다. 어떠한 규칙도,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기억은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힌다.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기억해야할 까. 뇌는 모든 기억을 담도록 하지 않는다. 적당히 망각하고 적당히 기억하면 될 텐데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유월이 있어 아름다운 장미조차 핏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유해를 발굴하여 산화된 뼛조각을 찾아 그날의 고통을 돌아보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시간은 평행이동을 한다. 가해자가 있어 피해자가 있고, 그래서 용서받고 싶은 사람과 용서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남북은 오랜 세월지난 지금도 동족이 피투성이 되도록 싸웠던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와 조국의 이름으로 ‘한국전쟁’, ‘조국해방전쟁’은 다른 기억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꽃들이 일시에 피어 무작위로 향기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오월이요. 하얀 밥을 머리에 이고서 하늘을 우러르는 나무의 경건함을 볼 수 있는 것도 오월이다. 꽃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것도, 꽃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열매가 도톰히 자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오월이다. 오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하는 것은 여름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고, 울바자 사이로 삐어져 나온 꽃이 더욱 붉고 아름다운 것은 경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아카시아 꽃 향기가 그득하다. 바람이 불어오면 양태머리를 땋아올린 꽃송이가 꿈결같이 밀려온다. 콧구멍으로 후~ 들어오고 후~ 나가고 잡힐 듯 말 듯, 그리고 수수꽃다리 향기는 얼마나 진했던가. 한 송이라도 가져오면 집안이 향기로 가득하다. 향기라도 마음껏 취할 수 있었으니 스물한 살 청춘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맨발의 청춘이라 하지 않는가. 너무나 초라하고 가난해서 추억조차 힘겹지만 그래도 20대만큼은 빛나게 반짝인 때이다. 아무도 아니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스스로는 알고 있으니 그것은 후각 이 지각을 깨운 덕분이다. 아카시아 꽃, 수수꽃다리 향기너머
남쪽의 오월은 가정의 달로 분주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 부모자식간 사랑을 확인하는 달이다. 양로원을 찾아가 꽃을 달아준다거나 봉사활동으로 평시에는 몰랐던 나이 듦을 생각해본다. 스승의 날도 있고 부처님 오신 날도 오월에 있다.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간다. 즐거이 받는 분도 있고 부담스러워하는 스승도 있다. 석가 탄신일에는 아름다운 색상의 풍등이 거리에 가득히 달린다. 오월에는 기념일이 많아 지출해야 하는 돈이 많아지는 달이기도 하다. 북쪽에도 어린이날과 유사한 조선소년단 창립일이 있다. 조선소년단은 초등학교 2학년이면 선서를 통해 가입하는 정치조직이다. 어버이날은 없으나 어머니날이 있다. 어머니날이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쪽에서는 출산을 장려하고 제한하기도 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높게 본다. 어버이는 부모보다는 수령이라는 의미가 크다. 모든 것이 수령 영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교육되므로 남쪽과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북쪽에도 스승의 날이 있을까. 스승의 날은 없어도 스승에 대한 노래는 있다. 남쪽에서 스승의 날과 유사하게 교육절을 기념한다. 이날 학생과 제자가 만나 스승에게 감사를 전한다. 북쪽에서
봄은 꽃의 축제이다. 약속하듯 일시에 피었다가 밤새 우수수 지고, 나뭇가지에는 파릇하게 새싹이 돋아난다. 죽고 사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계절, 4월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달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이날에 감사예배를 드리고 계란이나 떡을 나눈다. 고향 북쪽은 어떠한가. 남쪽의 봄과는 의미가 다르다. 꽃의 축제가 아니라 수령의 탄생을 기념하는 4월의 봄 축제가 열린다. 모든 행사를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에 맞추어 진행한다. 국외 예술단을 초청해 예술축전 행사도 아주 크게 한다. 부모님 생신은 잊고 있어도 절대 잊어서는 아니되는 수령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평양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생필품이 부족한 시기 이날에 맞추어 교복이나 당과류를 공급받으면 수령의 은덕이라고 칭송했다. 지방도 이날에는 거리를 청결하게하고 울긋불긋 꽃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다. 국가는 곧 수령이며 수령이 태어난 날을 ‘태양절’이라 한다. 그러니 4월은 곧 수령의 봄이며 죽은 자를 기억하고 부활하고자하는 봄이다. 전문가들은 이날에 맞추어 북쪽에서 미사일을 쏠 것이라 예측한다. 요즘은 참으로 걱정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간인이 희생되고 수많은 피난민 행렬을 볼 때면 고향을